5년 前 메르스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입력 2020-01-29 17:32   수정 2020-01-30 01:35


문재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방역 대책, 교민 격리 문제 등을 두고 우왕좌왕하면서 국민 불신과 사회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여론에 휘둘리면서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 때 사태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거주하는 교민 700여 명을 전세기로 국내에 이송해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격리 수용한다고 29일 발표했다. 전날 충남 천안을 격리 장소로 정해 발표하려다 주민들이 반발하자 하루 만에 장소를 바꾼 것이다.

정부 결정이 알려지자 해당 지역 주민들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아산 주민들은 이날 경찰인재개발원에 집결해 트랙터 경운기 지게차 등을 동원해 주변 도로를 막고 “우한 교민 못 받는다”며 반대 집회를 열었다.

정부의 신중하지 못한 대응은 메르스 사태 때와 닮았다. 박근혜 정부는 첫 환자가 발생한 뒤 20일 넘게 환자가 방문한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다가 뒤늦게 정보를 발표해 혼란을 키웠다. 당시 국내에서만 186명이 감염되고 38명이 사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를 두고 혐오 여론이 확산되는 모습도 메르스 사태 때와 판박이다. 당시 감염 사실을 모른 채 이곳저곳을 오간 환자들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정부는 30일부터 이틀간 300인승 전세기 네 대를 동원해 우한 교민 700여 명을 이송하기로 했다. 첫 전세기는 30일 오전 10시 인천공항을 출발해 같은 날 오후 7시 김포공항에 도착한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결국 "무증상자 우선 입국"…하루 새 두번 바뀐 교민 이송대책
5년前 메르스 사태 때처럼…정부 또 우왕좌왕


“37.5도 이상 발열, 구토, 기침, 인후통, 호흡곤란 등 의심 증상자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다.”(지난 28일 외교부 관계자)

“유증상자(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의심 증상이 있는 중국 우한 교민)를 한국으로 이송할 계획이다.”(29일 오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우선 무증상자만 이송하겠다. 앞으로 (유증상자 이송을 위해) 중국 당국과 협의하겠다.”(29일 오후 김강립 복지부 차관)


우한에 사는 한국 교민 이송 방안을 두고 하루 만에 바뀐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29일 오전 박 장관 발언이 나온 뒤 복지부와 외교부는 불과 아홉 시간 만에 “유증상자 이송에 대해 중국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말을 바꿨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경험한 뒤 감염병 대비 시스템은 많이 갖춰졌지만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대처 모습은 그대로라는 비판이 나온다.

혼란 키우는 부처 간 엇박자

박 장관의 유증상자 이송 발언은 혼란을 키웠다. 전날 외교부 설명과 달리 이날 오전 유증상자를 이송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바로 번복됐다. 정부는 증상이 없는 우한 교민만 우선 이송키로 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 대처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증상이 없는 사람만 국내로 이송하면 한국으로 오길 희망하는 일부 환자가 증상을 속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열이 나도 해열제 등을 먹고 증상이 없다고 답할 수도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혼란도 반복되고 있다. 28일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개학 연기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교육부와 국무총리실은 곧바로 “연기 검토는 없다”고 바로잡았다.

평택시와 보건당국도 엇갈린 발표로 혼란을 키웠다. 평택시는 28일 오전 브리핑을 열고 국내 네 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와 96명이 접촉했다고 발표했지만 세 시간 뒤 질병관리본부는 172명으로 수치를 정정했다. 국민의 혼란을 잠재우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 병원 방문도 ‘부적절’ 비판

문재인 대통령의 국립중앙의료원 방문, 정세균 국무총리의 서울시 보라매병원 방문을 두고서도 신중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문 대통령이 찾은 국립중앙의료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두 번째 환자가 격리돼 치료를 받는 곳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을 방문하면 동선을 짜고 의전을 하느라 병원에는 불필요한 업무가 늘어난다. 메르스 사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환자를 치료하는 서울대병원에 갔을 때도 똑같은 비판을 받았다.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에 감염병 환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의 목소리만 커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 당시엔 환자 상당수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인터넷 악플 때문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증상이 심해진 환자도 있었다. 의사들이 나서서 “메르스 환자도 피해자”라고 호소했을 정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중국인과 조선족을 향한 혐오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일본 제품을 쓰지 않는다는 내용의 ‘노 재팬(no Japan)’ 포스터는 ‘노 차이나(no China)’로 바뀌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감염내과 의사들은 “감염병 포비아가 심해져 혐오 여론이 늘면 환자 또는 병원이 진료 이력 등을 숨긴다”며 “이 때문에 질환이 추가 확산될 위험이 커질 수 있으므로 좀 더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여전한 방역망 허점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 관리 시스템은 보강됐다. 감염병 유행지에서 입국하는 사람은 로밍한 휴대폰 정보 등을 활용해 입국 단계부터 모니터링된다. 잠복기에 입국한 환자를 의료기관 등에서 거르는 시스템도 갖춰졌다. 의료기관들은 응급실 앞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했다. 감염 의심 환자가 먼저 이곳에서 진찰받도록 해 다른 환자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 대응에는 여전히 허점이 많다는 평가다. 메르스 사태 때의 실수도 반복됐다. 두 번째 환자는 우한을 다녀왔지만 열만 난다는 이유로 공항 검역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일부 의료기관에서는 해외여행 이력 확인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다수 국민은 중앙정부, 지자체, 산하 기관 등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않고 공공 영역으로 동일시한다. 관계기관이 잘 공조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위기 소통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다.” 2015년 메르스 백서에 실린 문구다.

이지현/서민준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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