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31일 밤 11시(현지시간)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단행한다.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이다. 하지만 영국이 올해 말까지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가능성이 낮아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는 영국의 EU 탈퇴) 우려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 땐 영국의 교역이 급감할 가능성이 있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럽의회는 29일 본회의를 열어 브렉시트 협정을 공식 비준했다.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를 통해 영국은 EU와 친구이자 동등한 주권자로서 새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렉시트는 올해 말까지 2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는 영국이 31일 밤 11시를 기해 EU 집행부와 산하기구에서 모두 탈퇴하는 정치·외교적 브렉시트다. 2단계인 경제적 브렉시트는 올 연말 이뤄진다. 이때까지 영국은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잔류한다. 내년 1월 1일부터는 경제적으로도 결별한다. EU는 올해 말까지 영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존슨 총리는 경제적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英·EU, 47년 만에 '정치적 이혼'…1년간 'FTA 줄다리기'는 계속될 듯
英, EU 회원국 지위 잃지만 경제엔 당장 큰 변화 없어
31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브렉시트의 첫 단추를 끼우는 데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언론은 31일을 ‘이혼도장을 찍는 날’로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이혼 후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다. 영국은 EU 정치무대는 떠나지만 올해 말까지는 EU 경제권에 잔류한다. 이 기간에 양측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실패한다면 세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미칠 우려가 있는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준비 없는 영국의 EU 탈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된다.
2단계로 나뉜 브렉시트
31일 밤 11시 브렉시트가 단행되면 영국은 더 이상 EU 회원국이 아니다. 영국은 EU의 3대 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 유럽이사회, 유럽의회에서 배제된다. 10여 개 EU 산하기구에서도 탈퇴한다. EU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상실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정치·외교적 차원의 브렉시트다.
영국과 EU 간 경제 분야에서 당장 큰 변화는 없다. 영국은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올해 말까지 잔류한다. 영국과 EU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전환(준비)기간을 두기로 했다. 전환기간엔 지금처럼 역내 사람과 자본, 상품,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된다. 이 기간에 영국은 EU와 종전처럼 무관세 교역이 가능하고, EU 규제를 똑같이 적용받는다. 영국은 이른바 ‘이혼합의금’으로 불리는 300억파운드(약 46조원)가량의 EU 분담금을 2060년까지 분할 지급한다.
전환기간에 영국 정부는 EU 및 세계 주요 국가와 FTA를 체결한다는 계획이다. 전환기간은 영국과 EU가 합의하면 한 차례에 한해 최대 2년 연장할 수 있다. 6월 30일까지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영국 정부가 11개월에 불과한 짧은 전환기간에 EU와 FTA를 체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FTA뿐 아니라 외교안보, 교통, 교육, 이민 정책 등 다른 협상 분야도 광대하기 때문이다. EU 행정부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전환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역협상 놓고 영국 압박하는 EU
무역협정을 놓고 양측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U는 영국이 유럽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선 브렉시트 이후에도 기존 EU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EU에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려면 EU 규제를 따르라는 뜻이다. EU는 영국 정부의 투자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EU 기업들과의 공정 경쟁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정부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규정을 그대로 준수하면 EU 단일시장에 잔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판단에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EU와의 FTA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올해 말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완전히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전환기간 내 FTA 체결 없이 영국이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서 탈퇴하면 노딜 브렉시트에 버금가는 경제적 충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관세 부담에 따른 무역 축소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 관세동맹을 탈퇴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아 교역하게 된다. 이 경우 영국은 EU산 물품을 수입할 때 WTO의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영국에 수출할 때 지금까지는 무관세였지만 2021년 1월부터는 10%의 관세를 적용받는다.
노딜 브렉시트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유럽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018년 말 영국은행은 노딜 브렉시트가 실현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8%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를 웃돌고, 특히 EU와의 교역 감소 등을 고려하면 세계 경제도 0.2%포인트 이상 생산 감소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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