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일 캐나다 밴쿠버공항.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딸이자 최고재무책임자인 멍완저우가 캐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중국법이나 캐나다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대(對)이란 무역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된 것이다.
위 두 사례는 미국법이 미국 영토를 벗어난 지역에서 적용된 경우다. 최근 미국 정부가 미국 이외 지역에서 부정부패, 자금세탁, 테러지원이나 인권유린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른 외국인과 외국 기업을 처벌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2018년 미국은 1500건의 사람, 회사, 선박 및 단체를 제재했다. 2016년에 비해 세 배나 증가했다. 그 결과 ‘미국 법의 긴 팔’은 글로벌 기업의 걱정거리가 됐다. ‘긴 팔로 미국의 재판관할권 밖에서 끌어오는 것’을 빗댄 표현으로, 미국법의 역외적용(域外適用)을 의미한다.
미국법 준수의 세계화 시대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14년 BNP파리바은행은 쿠바, 이란, 수단에 적용한 미국의 금수조치를 어긴 혐의로 89억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프랑스 기업 알스톰과 독일 기업 지멘스는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엄청난 벌금에 처해졌다. 2018년 스위스 광산회사인 글렌코어는 해외부패방지법과 자금세탁법 위반 혐의로 미국 정부의 수사를 받았다. 2018년 미국 상무부는 북한, 이란과 불법 거래하고 제재를 위반한 중국 통신업체 ZTE에 무거운 벌금과 제재를 부과했다.
미국법의 역외적용은 국제법상 ‘주권평등의 원칙’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국제재판소가 해당 행위나 상황이 자국과 일정한 관련성을 갖는 경우에만 역외적용이 가능하다고 판시한 이유다. 그러나 미미한 연결고리를 근거로 미국 사법기관이 관할권을 행사할 때도 있다. BNP파리바는 불법 거래가 달러화로 이뤄졌다는 이유로 제재받았다. 미국에 은행 계좌를 두고 있거나 미국에 있는 서버를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은 사실로도 제소당할 수 있다. 9·11 테러 사건 이후에는 강화된 테러법에 따라 미국을 목표로 하지 않은 자, 미국 국적이 아닌 자와 미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자도 기소할 수 있게 됐다.
일부 학자는 ‘미국법 준수의 세계화’ 시대가 도래했으며 미국이 세계의 경찰, 판사 및 배심원이 됐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국제법상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세컨더리 보이콧’이다. 이는 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개인에 대한 역외적 조치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광범위한 역외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글로벌 화폐 거래의 88%가 달러로 이뤄진다. 미국의 관할권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미국 시장이나 미국이 통제하는 금융결제 시스템으로부터 퇴출당할 수 있다.
긍정적 측면도 상당하다. FIFA 간부에 대한 기소가 없었다면 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돼온 FIFA의 개혁도 없었을 것이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2500만달러의 자금을 해제하는 대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일정한 양보를 약속한 것도 미국 정부가 BDA를 자금세탁 우려가 있는 금융기관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역외적용 협력체제 모색해야
미국은 2017년부터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 북한과 거래하는 제3자도 제재하고 있다. 2020년 미국의 국방수권법에도 북한과 불법 거래하는 개인과 금융기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강화하는 ‘오토 웜비어 북핵 제재법’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포괄적 경제제재는 유용한 협상 수단이자 ‘비군사적 무기’로서 외교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이 보다 투명하고 균형되게 역외관할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역외적용은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냉전시대에 유럽 국가들은 자국 기업이 외국의 법을 따르지 않도록 하는 대항입법을 채택해 미국의 기도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또 피해를 본 국가가 미국을 우회하는 국제 결제시스템을 모색할 수도 있다. 작년 초 독일, 프랑스, 영국이 미국의 이란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자체 금융결제 채널인 인스텍스(INSTESX)를 구축한 것이 그런 사례다. 역외적용 문제에 보다 협력적인 체제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