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판 돈까지…어디에 쓸지 소명하라니"

입력 2020-02-03 17:34   수정 2020-02-0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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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부동산 실거래에 대한 단속을 강도 높게 하면서 주택 매매자와 자치구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서울 주요 자치구에서는 집을 판 매도인에게 향후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까지 소명을 요구하고 있어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매도자금 어디에 쓸지도 소명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거주하는 김모씨(60)는 최근 아파트를 매도한 뒤 송파구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씨에 따르면 송파구청은 아파트를 거래한 뒤 돈을 받은 통장내역과 이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대금을 지급받은 통장내역을 요구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아파트 매도 금액을 어디에 사용할지를 구청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가 아파트 거래에 대한 정부의 감시정책을 이해하더라도 이는 사적 재산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최대 부동산 커뮤니티인 ‘부동산스터디’에는 지난해 12월 전후로 “단순 매수·매도인데 자금출처 조사가 나왔다”는 글이 다수 게재되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 아파트 한 채를 구매한 박모씨(40)도 지난달 21일 강동구청으로부터 ‘아파트 거래 전후 2주간 입출금내역을 첨부하지 않으면 국세청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에 통보조치가 될 수 있다’는 통지서 한 통을 받았다. 강동구청은 △부동산거래 소명서 △거래계약서 사본 △거래대금 지급을 확인할 수 있는 통장 사본 △매수인은 주택취득 자금조달계획서에 따른 거래대금 지급 증빙자료 △매도인은 거래대금을 예금 외에 다른 용도로 지출할 경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등을 요구했다.

박씨는 “이미 아파트를 구입할 때 자금계획서를 모두 제출했는데 다시 소명하라는 통지가 왔다”며 “집 한 채를 샀을 뿐인데 주택 거래 전후 2주간 통장 사본을 요구해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국세청 및 서울시 자치구는 탈세와 체납에 엄정 대응하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다는 이유로 지난해 10월 자금출처 단속 이후 부동산 실거래 점검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가격 급등지역의 고가주택에 대해 자금조달계획서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토부는 부동산거래법 제6조를 이 같은 조치의 근거로 들었다. 이 법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 및 신고관청은 신고내용조사 결과 그 내용이 이 법 또는 ‘주택법’ ‘공인중개사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다른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을 때 이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관계 행정기관에 통보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조사는 구청에서 하지만 조사대상자에 대한 정보와 범위 등은 국토부에서 내려온다”며 “거래한 뒤 자금으로 다른 아파트를 매수했는지 물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국토부가 상식적인 범주를 넘어서 매도자까지 부동산 거래를 조사한다면 서울 아파트 거래는 멈추고 부유층은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등 사회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월권…조사근거 모호

아파트 거래에 대한 정부의 감시 범위가 매수인 위주에서 최근 매도자까지 넓혀진 것과 관련해 지나친 월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초구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구청에서 매수자 자금조달계획서를 묻는 일은 자주 있지만 매도자의 자금까지 묻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며 “매도자까지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지면 주택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금출처조사의 대상을 정하는 기준이 불분명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행법상 지자체가 어디까지 조사할 수 있는지 범위가 모호하다”며 “단순히 거래 가격이 시세보다 높거나 낮다는 이유로 부당한 조사를 한다면 시장을 겁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까지 고가주택 취득 관련 전수분석 등 사후관리에 나서면서 정상적인 아파트 거래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 이상 아파트를 거래하려면 자금조달계획서 등 15개의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며 “거래비용이 늘어 대다수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는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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