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하나에 10만명 청약하는 마당에…7만명도 문제 없었다는 황당 답변 [김하나의 R까기]

입력 2020-02-04 08:21   수정 2020-02-04 08:33


정부가 18년 만에 새로운 청약시스템이라고 들고 나온 '청약홈'이 첫 날부터 말썽이다. 1년6개월여를 준비한 사이트인데, 방문자가 많다고 서버가 다운됐기 때문이다.

청약업무를 새로 맡게된 한국감정원은 '동시접속 7만명도 문제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변명거리도 안되는 설명이다. 새로운 청약홈에는 청약 뿐만 아니라 단지정보와 시세정보까지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터였기 때문이다. '청약'이라는 목적을 갖고 접속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메뉴까지 만들어냈다고 설명자료를 여러차례 돌렸으니 말이다. 청약자들에게도 미리 정보조회를 통해 '청약자격사전관리'가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그러니 '진짜 내 점수'가 궁금한 예비 청약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해 청약과 관련된 기사를 쓰면서 많이 사용한 표현을 꼽자면 '최고 경쟁률', '최대 청약자', '기록 경신' 등이었다. 하반기 들어 서울을 비롯해 일부 광역시와 시에서 집값이 상승하면서 분양가와 시세의 차이가 벌어졌고, 이른바 '로또 아파트'를 잡으려는 청약자들이 몰리면서 이러한 기록은 연속으로 깨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경쟁률이 높았지만, 단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청약자수만 놓고 보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전이나 광주, 경기도 수원 등에서 분양됐던 매머드급 단지들은 가뿐히 몇만명을 넘었다.

청약 광풍 수준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대전시에서는 지난해 대전 유성구 복용동 '대전 아이파크 시티'에 10만명이 넘게 몰렸다. 일반 분양 1960가구 모집에 10만6786명이 신청했고, 이는 대전 1순위 청약 통장 보유자 약 5명 중 1명이 청약했다는 계산까지 나왔다. 2018년에 도안신도시 갑천지구 3블록 '트리플시티'의 1순위 청약에는 13만여명이 몰린 적이 있었다.

연말 막바지에 청약을 받았던 경기도 수원시의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수원'에도 7만명이 넘게 신청했다. 일반공급 951가구 모집에 7만4519명이 몰려 1순위 마감했다. 수원에서는 3000가구가 넘는 재개발 단지가 2곳이나 분양을 준비중이고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들도 연내 공급을 계획하고 있다. 1순위 청약자들이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멀리 가지 않아도 올해는 단군이래 최대 단지라고 불리는 '둔촌주공' 재건축이 대기중이다. 단지 규모만 1만2032가구, 일반분양으로 나오는 물량만 4786가구에 이른다. 분양가에 따라 차이는 나겠지만, 제 아무리 특별공급으로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일반공급으로 수천가구가 나오게 된다. 송파에서 전세로 살고 있거나 강동구 고덕지구 일대에서 집을 놓쳤던 무주택자들은 과장을 좀 보태자면 한집 걸러 하나씩은 청약을 할 기세다.

송파 강동구 일대에서는 학습효과가 방금전 끝났다. 대단지의 입주 충격은 얼마 가지도 않았고, '아파트 청약 당첨은 곧 로또'라는 게 확인됐다. 송파구의 헬리오시티(9510가구)와 강동구의 고덕 그라시움(4932가구)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단지가 너무 크다', '집값이 오르겠느냐'고 평가했던 무주택자들은 이제 후회막급이다. 1년동안 4억씩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해야하는 게 이러한 무주택자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서울 뿐만이 아니다. 미분양이 남아 있는 지방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나중에 후회할라', '지금이라도 청약넣자'는 수요들이 잠재되어 있다. 이들 수요는 부동산 민심기간인 설연휴까지 지나면서 더욱 강해졌다. 명절에 가장 많이 나눴던 얘기 주제는 '집을 사야돼 말아야해'였을 것이다.

청약제도는 지난 40년 동안 약 140번의 수정 및 개정을 거쳤다. 누더기 청약제도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복잡했고, 오랜만에 청약에 나서는 무주택자들은 부적격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당첨자의 자격은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국토교통부(당첨사실·주택소유 여부)와 금융결제원(청약통장 가입기간), 행정안전부(주민등록상 실거주 여부)에서 자료를 받아 검증을 거친다. 여기에 특별공급의 경우에는 검증해야할 자료들이 더 많다.

정부가 나서서 이를 통합하고 간편하게 하려는 의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박수받아야할 자리에서 잔칫상을 엎은 건 상을 차린 당사자들이 됐다. 정부가 민간기관인 금융결제원에서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으로 청약업무를 이관하겠다고 한 건 2018년 9월13일, 9·13 대책을 통해서였다. 선발표 후시행이었다. 발표를 먼저하고 준비를 시작하다보니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잡음도 곳곳에서 나왔다. 막판에는 주택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안 통과가 지연되기까지 했다.

이렇게 1년 5개월이 흘렀다. 실무자들은 힘들었을 것이다. 오픈 시한은 박아놨으니 설 연휴에도 밤샘 근무도 했을 것이다. 그동안 무주택자들도 못지 않게 힘들었다. 한 때 주춤했던 집값은 치솟았고, 내 집 마련 욕구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설문조사 플랫폼 ‘나우앤서베이’가 지난해 12월 10∼18일 전국 1420명(남성 730명·여성 69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부동산 가격 상승·부의 양극화 심화(15.7%)’가 1위였다. ‘새해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에는 ‘내 집 마련(17.0%)’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게 현실이다.

*[김하나의 R까기]는 부동산(real estate) 시장의 앞 뒤 얘기를 풀어드리는 코너입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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