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못말리는 유동성 장세…신종코로나 무시하고 질주

입력 2020-02-05 07:41   수정 2020-02-05 10:34



"뉴욕 증시의 반등은 이번 상승장이 펀더멘털(경기)이 아니라 유동성에 기반한 점이라는 걸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유동성만 믿고 상승하고 있다."

월가의 한 펀드매니저의 말입니다.

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아침부터 급등했습니다. 다우는 407.82포인트(1.44%) 상승했고, S&P 500은 1.5%, 나스닥은 2.1% 급등했습니다.
테슬라가 또 다시 13.7% 상승해 887.06달러로 마감하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테슬라는 이날 장중엔 20% 넘게 폭등하면서 968.99달러까지 올라 1000달러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미 증시의 이날 반등은 아침부터 예고됐다는 게 이 펀드매니저의 설명입니다.
이날 아침 뉴욕연방은행이 실시한 레포(환매조건부채권) 입찰에서 무려 945억달러가 풀린 겁니다. 하루짜리 레포에 645억달러가 신청해 모두 받아갔고, 14일짜리 기간물 레포엔 590억달러가 응찰해 한도인 300억달러가 모두 소진됐습니다. 한도액보다 두 배 가까이 수요가 몰린 겁니다. 기간물 레포 입찰에 이렇게 많은 양이 몰린 건 지난해 9월 중순 레포 시장 개입이 시작됐을 당시를 빼고는 처음입니다.



레포 시장은 작년 12월부터 꾸준히 안정되어 왔습니다. 응찰 규모가 계속 한도액에 못미치자 Fed는 지난 1월14일 기간물 레포의 한도액을 오늘부터 350억달러에서 300억달러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한도를 줄인 첫날 수요가 넘쳐버린 것입니다.



레포 시장에서 풀린 돈은 곧바로 증시로 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날 증시는 아침부터 폭등세를 지속했습니다.

이 펀드매니저는 "상당수 헤지펀드가 레포을 통해 확보한 유동성으로 '숏스퀴즈'에 몰린 테슬라 주식을 샀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종코로나 확산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과 세계 경기에 당분간 짐이 될 게 확실시됩니다. 얼마나 충격을 줄 지 불확실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유가는 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으로 50달러선이 무너졌습니다. 미국의 국채 금리도 신종코로나 확산 전 연 1.9%에서 지난주 1.5%까지 내렸다가 이날 1.6%까지 소폭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상태이고, 하이일드본드의 스프레드도 신종코로나 확산 전 90bp대에서 현재 110bp 선까지 벌어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증시처럼 흥분하지는 않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뉴욕 증시의 투자자들은 신종 코로나의 영향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넘쳐나는 유동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신종코로나로 인해 미국의 경기까지 둔화되면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전날 아이오와주에서 민주당 코커스가 치뤄졌고, 좌파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선두로 나설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증시 투자자들은 유동성을 믿는 탓인지 별달리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월가의 다른 관계자는 "어제 경선 결과가 앱의 결함으로 발표가 지연되는 것을 두고 민주당내 (다수파인 힐러리파의) 샌더스에 대한 견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나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번 민주당의 개표 오류는 민주당이 과연 집권당 자격이 있는 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며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확률이 높아졌다고 판단해 주식 매수에 나선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주당은 하루 늦은 이날 오후 5시(미 동부시간) 62% 개표된 결과(100%가 아님)를 공개했습니다.

피트 부티지지 사우스밴드 시장이 26.9% 지지율로 25.1%인 샌더스 의원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으로 공개됐습니다.

샌더스 지지자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지며 2016년 경선 때처럼 당내 내분이 불거질 수도 있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좋은 일이겠지요.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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