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는 6일 한국규제학회로부터 제출받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 제목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추진전략 연구'입니다.
학회는 보고서에서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의 10 대 원칙'을 소개했습니다. 기술개발예산의 1%를 규제개혁예산으로 하고, 규제개혁위원회를 공정위 수준의 실질적인 규제개혁 당국으로 만들고, 위헌 소지가 크고 방만하게 운영되는 고시 등 하위 행정규정을 법령화하는 방안 등 입니다.
10대 원칙 중에는 "금지규정의 포괄적 예외조항인 ‘기타, 그 밖의, 등’ 문구를 전체 법령에서 삭제하는 로드맵을 구축하자"는 내용도 있습니다. 한국 법제는 일정한 사항에 대해 금지 또는 허용을 규정한 후, 그 해당사유를 나열하다가 시행령으로 위임하는 형식을 통해 정부에 사실상 법령개폐권을 주는 입법문화가 만연해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형태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 으로 정하는 사항'입니다. 국회가 법률사항의 틀을 정하고, 그 구체적 내용은 대통령령 이하 행정명령에게 위임해 버리는 형식입니다. 국회 입법이 충분한 연구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법률이 정부입법이며 또는 청부입법인 것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보고서는 금지규정의 포괄적 예외조항인 ‘기타, 그 밖의, 등’ 문구를 전체 법령에서 삭제하거나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할 것을 제언했습니다. 보고서는 "법률사항은 국회가 정해야 한다"며 "‘기타, 그 밖의, 등’과 같은 포괄적 단어를 통해 행정벌과 형사벌의 기초가 되는 금지사항을 정하는 것은 법률주의 내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입법행태"라고 했습니다. "금지 또는 허용 요건인 항목은 100개가 되더라도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제언입니다.
“각종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진흥법을 폐기하자"는 원칙도 눈에 띕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는 총 577개의 각종 산업 진흥, 촉진 및 발전에 관한 법령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진흥 법령은 관련 산업 진흥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규제적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입니다.
내용도 대부분 ‘기본계획의 수립’, ‘전문인력의 양성’, ‘인증제도의 도입’ 등 천편 일률적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문인력 양성제도는 자격증의 남발과 국가의 과도한 교육개입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대학 관련학과에 지원하면서 학사에 개입하는 등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인증제도는 진흥을 위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국가가 품질과 성능, 서비스의 수준을 보증하는 것으로 인식됨으로써 인증기업과 비인증기업 간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인증이 비용을 동반할 경우 영세중소기업의 시장진입을 제한할 소지가 큽니다. 창업진흥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진흥원’ 형태의 공공기관 설립을 통해 정부조직이 실질적으로 비대화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이 보고서가 국회와 정부의 입법에 얼마나 반영이 될 수 있을까요. 당정이 매번 규제개혁을 부르짖고 방안을 고민하지만 별반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도 어쩌면 정답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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