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제외해도 K5에 쏘나타 완패
현대자동차 쏘나타를 얘기할 때 흔히 '국내 중형 세단의 견고한 성벽'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그만큼 8세대를 거치는 동안 중형 세단 부문에서 쏘나타를 위협하는 제품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이었던 2002년 르노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후 SM5 월간 판매가 쏘나타를 잠시 넘었지만 파업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 실질적인 허물기는 없었다.
그런데 LPG를 제외하면 얘기가 다르다. 중형 LPG 세단은 영업용 및 렌터카 판매가 대부분인 반면 휘발유 엔진은 개인 자가용 구매라는 인식에 기반해 르노삼성은 휘발유 엔진의 중형 세단이 종종 쏘나타 아성을 위협했다는 표현을 한다. 그럼에도 차명으로 집계되는 판매대수에서 언제나 대표 중형 세단은 쏘나타이고 여전히 '넘사벽'을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쏘나타 아성'이 추억으로 바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기아차 K5의 강력한 인기가 쏘나타를 근본부터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통계에 따르면 쏘나타는 6,423대로 8,048대의 K5에 1,625대 뒤졌다. 물론 K5 신차효과를 감안할 때 당연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흥미로운 점은 숫자 뒤에 감춰진 본질적인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선 이미 쏘나타 아성이 예전 같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다.
양사에 따르면 지난달 판매대수 통계로 잡힌 쏘나타 6,423대에는 구형(LF) LPI 1,668대가 포함돼 있다. 8세대(DN)는 택시 판매가 없는 만큼 이 숫자는 7세대 LF의 영업용 택시 판매 숫자다. 같은 기간 K5 구형 LPI도 판매됐지만 물량은 433대에 그쳤다. 따라서 쏘나타 7세대 택시가 없었다면 K5는 쏘나타를 무려 3,200대 정도 앞섰을 것이란 계산이 도출된다.
여전히 LPI 택시 시장에서 쏘나타의 아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택시를 제외한 1.6ℓ 터보 차종은 K5가 쏘나타 대비 무려 1,538대나 앞선 2,837대, 주력인 2.0ℓ 가솔린 제품은 K5가 3,098대로 쏘나타의 1,598대를 무려 1,500대 차이로 눌렀다. 택시를 제외한 LPI 판매도 K5(1,262대)가 846대에 머문 쏘나타를 제쳤다. 유일하게 K5가 뒤진 항목은 406대에 그친 하이브리드지만(쏘나타 1,012대) 하이브리드는 여전히 주력 수요가 아니라는 점에서 2020년 1월 쏘나타는 K5에 체면을 단단히 구긴 셈이다.
여기서 현대차가 더욱 초조한 것은 K5의 시장 경쟁력이다. 상품성은 비슷해도 디자인 측면에서 젊은 소비층의 시선이 K5에 모아진다는 의견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서다. 게다가 쏘나타의 경우 그랜저에도 수요를 내주고 있어 적지 않은 고전이 예상된다. 따라서 쏘나타가 K5에 뒤지는 결과가 지속되면 다시 '쏘나타 택시' 얘기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난 7세대 LF 또한 출시 당시에는 택시 제외 방침을 발표했지만 결국 월간 판매가 흔들리며 택시 추가를 선언, 표면적인 숫자 아성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어떤 심장이 탑재돼도 '쏘나타'로 집합된 판매대수 1위가 현대차에게는 중요 지표라는 얘기다.
물론 상황은 녹록치 않다. 중형 세단 수요는 점차 SUV로 넘어가고, 영입되는 새로운 소비자는 오히려 줄고 있어서다. 게다가 LPI 택시는 점차 전기로 전환된다. 그러니 8세대 쏘나타 택시를 내놓아도 예전만큼 판매될지 장담하기 쉽지 않다. 나아가 택시로 내놓을 경우 제품 이미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간 애썼던 프리미엄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K5가 택시 없이 중형 세단 최강자에 올라섰으니 쏘나타 아성이 무너질 것이란 해석은 설득력을 얻기 마련이고 아성의 자리는 K5가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쏘나타보다 낫다는 시장의 평가를 끌어낸 덕분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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