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자택 진료 서비스 솔루션을 갖고 있다”는 한 청년 사업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①집에다 스마트 베개, 스마트 워치, 스마트 체온계 등을 구비해 두면 ②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체온, 심박수, 체질량, 맥박 등의 데이터가 모이고 ③이는 정기적으로 주치의에게 전달, 분석되며 ④병원에서는 “일단 감기약 드세요” “오늘 건강 관리도는 87%” “스트레스 줄이세요” 등의 처방과 조언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말이다.
꽤 의미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①부터 ④까지의 사업은 불가능하다. 의료법 34조가 말하는 원격의료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①부터 ③까지, 원격모니터링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 또한 모호하다. 법률가들에게 물어보면 해당 부처에서 명확한 해석을 내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기특하게도(?) 청년 창업이 늘고 있다. 선진국의 공유 플랫폼을 들여와 사업을 벌이거나, 서민들에게 해외 투자의 길을 열어주는 금융공학으로 승부하거나, 떠오르는 헬스케어 산업의 틈새를 열어 선도자의 이익을 점하려는 젊은 사업가가 늘고 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두 가지다. 먼저 서비스 산업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스타트업 80% 이상이 의료, 금융, 공유경제, 빅데이터, 게임 등 서비스 분야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젊은 사업가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쉽게 일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잘사는 나라인 미국, 영국의 산업 경쟁력 핵심은 서비스에 있다. 실제 이들 국가의 서비스 산업은 각국 국내총생산(GDP)의 80%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59%에 불과하다. 10년 전 미국의 톱기업은 엑슨모빌(정유), 셰브론(정유), GM(자동차), 포드(자동차), AT&T(통신)였지만, 현재 블루칩은 단연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이다. 세계 74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350조원인 데 반해 생산 제품 하나 없는 페이스북은 670조원에 달한다.
청년 창업의 두 번째 공통분모는 규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영국의 법체계는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수정해 규제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와 달리 우리나라는 열거된 것만 해야 하는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이라는 포지티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업을 하려면 담당 공무원의 유형별 유권해석이 필요하고, 안 되면 규제 샌드박스 같은 특례나 허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청년 창업이 늘다 보니 의료뿐 아니라 금융에서도 제도적 루프홀(loophole·법률상 구멍)이 메워지고 있다. 지난해 얼굴만 들이대면 결제가 되도록 페이스 페이(face pay) 규제를 풀었고, 어렵고 난해한 보험약관도 그림으로 만들어 간소화시키는 중이다. 공유 금융 플랫폼인 온라인투자연계업(peer to peer 금융업)의 근거 기준도 만들었고, 금융 데이터를 식별할 수 없는 가명정보로 바꿔 결합시키도록 했다.
공유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주방에는 하나의 사업자만 있어야 한다는 규제를 풀어 공유 주방 시대를 열었고, 서울 지하철역 인근에 공유 숙박도 열었다. 모두 청년 창업가들의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규제 개선에 나선 것이다. 비록 타다와 같은 공유 차량은 이해관계자 간 갈등으로 뾰족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모빌리티 사업에 대한 거시적 접근도 이뤄지고 있다. 올초에는 ‘데이터 3법’을 개정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산업 발전의 새로운 진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루프홀 메우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임시방편으로 끝날 수도 있다. 네거티브 규제시스템, 탄력적 근로시간제, 패자부활제 등을 전면 도입 또는 확대해야 한다. “이불 밖은 위험해” 식의 통제와 규제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바꿔 면역력 강한 경제로 키워나가야 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