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최대 4089만원…청년층 '현금 복지' 둑 터졌다

입력 2020-02-12 17:22   수정 2020-02-13 01:20


고용노동부의 ‘청년내일채움공제’(지원금 1800만원)와 ‘청년구직활동지원금’(300만원), 서울시의 ‘청년수당’(300만원)과 ‘청년월세지원’(200만원), 경기도의 ‘청년면접수당’(21만원)….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현금복지 정책들이다. 12일 한국경제신문이 이 같은 현금복지를 취합해본 결과 수도권에 사는 청년 한 명이 30대 후반까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최대 4089만원에 이르렀다. 여기에 드는 예산은 정부와 지자체를 합쳐 6조원에 달한다. 청년층 복지 혜택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졸업 후 2년차까지 취업이 안 되면 정부가 300만원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백수’ 3년차부터는 서울시가 300만원을 청년수당으로 준다. 서울시는 또 월세 지원금으로 200만원을, 임차보증금 대출이자로 100만원을 지원한다. 취업 후 월소득이 350만원이 안 되면 청년내일채움공제를 통해 정부 지원금 1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학 재학시절의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 이자 지원까지 합하면 전체 혜택은 40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현금 복지는 국제적으로 노인과 장애인, 아동 등 취약계층에 한해 제공된다”며 “청년이 취약계층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업이 잘 안 된다고,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청년들에게 현금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청년 복지를 늘리고 있는 것은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이라는 분석이다.

‘퍼주기 경쟁’을 하면서 비슷한 정책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회 초년생의 자산 형성을 돕겠다며 저축액만큼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책만 해도 서울시의 ‘희망두배청년통장’, 경기도의 ‘청년마이스터통장’ 등 6개에 이른다. 무분별한 경쟁에 나서면서 대전시는 예산이 부족해 올해 신규 가입자를 줄이기도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알바 급여 따로, 청년수당 따로…부정수급 놔둔 채 '묻지마 세금 살포'
정부·지자체 '청년 현금복지' 1인당 최대 4089만원


서울 신촌에서 맥주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최근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이상한 부탁을 받았다. 알바 급여를 친구 명의의 통장으로 넣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알바생은 “알바 사실이 드러나면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근로시간이 주 20시간을 넘으면 정부의 구직활동지원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 알바생이 한두 명이 아니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층 현금 복지가 줄줄 샌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일채움공제는 중기 퇴직금”

300만원인 구직활동지원금은 카드 형태로 지급된다. 유흥업소 등에서 사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다. 인터넷 포털과 카페를 검색하면 카드 안의 지원금을 현금화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아이폰 및 아이패드 등 신규 구입가와 중고가의 차이가 크지 않은 전자제품을 구입해 되파는 방식이다. 한 수급자는 “포장을 뜯지 않은 제품은 구입가와 거의 같은 가격에 팔려 쉽게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금 1800만원, 기업 기여금 600만원, 본인 적립금 600만원을 합쳐 최대 3000만원(3년형)의 목돈을 만들어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목돈 마련을 지원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매출과 인원 수 등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 기업을 정하다 보니 급여 수준이 높은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 컨설팅 업체 등의 고액 연봉자가 지원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정부가 급여 기준을 마련하고 지난해 월 500만원, 올해 350만원으로 더 내린 이유다.

내일채움공제 혜택을 보고 있는 이들도 ‘중소기업 인재 지원’이라는 취지의 현실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1년6개월간 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해 있는 B씨는 가입 기간이 끝나는 6개월 뒤 퇴사하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는 “공제 가입 기간 동안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중소기업의 근무 여건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닌 만큼 계속 근무할 생각은 없다”며 “공제로 마련한 돈을 학자금 삼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B씨처럼 공제 기간만 채우고 퇴사하는 직원들이 등장하면서 중소기업 사이에서는 “내일채움공제는 ‘퇴직금 채움공제’”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효과 없는 청년수당

청년복지 제도가 겉돌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지만, 사용처 등을 검증하는 수단이 유명무실한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의 구직활동지원금과 지자체의 각종 청년 수당을 받는 수급자는 한 달에 한 번 구직활동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고용부 온라인 청년센터 관계자는 “입사 지원 등의 직접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도 제한업종이 아닌 경우에는 간접 구직활동으로 인정해 사용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아예 보고서에 증빙할 근거 자료를 첨부할 의무를 두지 않아 사용처 검증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담당자는 “보고서에 쓸 내용이 없으면 꾸며서 써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구직활동보고서를 아예 받지 않는다.

통계를 들여다봐도 취업 지원을 명목으로 지원되는 청년수당 등 각종 지원책의 구직효과는 낮다. 지난해 8월 서울시가 청년수당 수급자 31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37.6%가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후 1~2년 된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점을 감안하면 성적이 신통치 않다는 평가다. 통계청이 지난해 미취업자 154만 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중 55.9%가 졸업한 지 1년 미만이었으며, 18.2%는 졸업 1~2년 후의 미취업자였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수당 같은 현금성 복지가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거의 없다”며 “구직활동에 나서게끔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도 필요한데 이런 고려가 없는 걸 보면 선심성 사업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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