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16일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로열 애들레이드GC(파73·6648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ISPS한다 호주여자오픈(총상금 130만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4개를 엮어 1오버파 74타를 쳤다. 최종합계 14언더파 278타를 적어낸 그는 2위 에이미 올슨(11언더파·27·미국)을 3타 차로 넉넉히 따돌리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20승으로 ‘전설’ 반열 오른 여제
2008년 US여자오픈을 시작으로 꾸준히 우승을 쌓아온 박인비는 이번 우승으로 LPGA투어 통산 20승 고지를 밟았다. 2018년 3월 뱅크오브호프 파운더스컵 이후 준우승만 다섯 번 기록한 뒤 1년11개월 만에 추가한 우승이다. 20승 이상을 수확한 선수로는 LPGA투어 전체를 통틀어 28번째다. 한국 선수로는 박세리(25승)만이 정복한 기록이다. 우승 후 동료들로부터 ‘샴페인 세례’를 받은 뒤 샴페인으로 목을 축인 박인비는 “꿈꿔왔던 기록”이라며 “지켜봐주고 응원해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18번홀에는 신지애(32), 최나연(33), 유소연(30) 등 절친 10여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돌아온 골프여제’의 20승 고지 정복을 축하했다. 이들은 봉사활동 모임인 ‘은가비’ 회원이기도 하다.
올림픽 여자 골프 2연패를 노리는 박인비는 이번 우승으로 세계랭킹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17위인 그는 단숨에 유력한 올림픽 대표 후보로 올라섰다. 이날 기준 박인비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한국 선수는 고진영(1위), 박성현(2위), 김세영(6위), ‘핫식스’ 이정은(9위), 김효주(12위) 등 5명이다. 6월 말까지 한국 선수 중 세계랭킹 상위 네 명에 들어야 대표로 선발된다. “도쿄올림픽에 나가려면 상반기에 2승 정도를 해야 한다”고 했던 그는 이번 우승으로 목표의 절반을 달성했다.
개막 후 열린 4개 대회에 모두 출전해 퍼트감을 끌어올린 것이 주효했다. 퍼팅을 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진 바람이 여러 차례 그를 시험대에 올렸다. 그때마다 퍼트가 빛났다. 박인비는 1번홀(파4)에서 보기로 시작했으나 3번홀(파4)에서 곧바로 버디로 만회했다. 4번홀(파4)에선 약 5m 거리의 중거리 퍼트를 홀 안으로 꽂아넣었다. 8번홀(파4) 위기 상황에서도 5m 거리의 파 퍼트를 성공했다. 380m의 긴 파4홀인 14번홀과 16번홀(파3)에서 두 타를 잃어 2타 차로 쫓겼다. 하지만 17번홀(파5)에서 다시 가볍게 버디를 낚아채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박인비는 시즌 들어 ‘투볼 퍼터’와 ‘세이버 투스’ 등 2종류의 퍼터를 번갈아 쓰는 등 퍼팅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번 대회 우승은 결국 2013년 메이저 3승을 내리 따낼 때 썼던 세이버 투스로 완성했다. 이 퍼터는 버디뿐만 아니라 2~5m 거리의 까다로운 파 퍼트를 잡는 데 도움을 줘 이번 우승의 수훈갑이 됐다.
다시 진군하는 기록 제조의 ‘여제’
박인비는 20승을 달성하는 동안 다양한 진기록을 쏟아냈다. 2015년 KPMG 위민스PGA챔피언십 3년 연속 우승으로 메이저대회 3연패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당시 안니카 소렌스탐(2003~2005년) 이후 10년 만에 나온 기록이었다. 같은 해 8월에는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제패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LPGA투어 역대 일곱 번째 그랜드슬램(4개 메이저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우승 중 메이저대회 트로피가 절반에 가까운 7개여서 ‘메이저 킬러’라는 별명도 얻은 그는 2016년 LPGA 최연소(27세 10개월 28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명예의 전당 입성도 박세리에 이어 두 번째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116년 만에 부활한 골프 종목 금메달까지 목에 걸며 세계 최초로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K골프, 개막 후 절반 싹쓸이
박인비의 우승으로 ‘K골프 군단’은 시즌 2주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올해 열린 4개 대회 중 2개의 트로피를 가져오면서 2015년과 2017년 거둔 한 시즌 최다승(15승) 경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슈퍼 루키’ 조아연(20)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뒷심에 아쉬움을 삼켰다. 지난주 빅오픈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고도 마지막 날 부진해 16위로 밀려났던 그는 이번 대회서도 4타를 잃고 공동 6위로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한국여자골프의 미래’라는 확실한 이미지를 쌓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LPGA투어는 약 한 달간 공백기를 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로 인해 아시아에서 열릴 예정이던 혼다LPGA타일랜드(태국), HSBC챔피언십(싱가포르), 블루베이LPGA(중국) 등이 모두 취소됐다. LPGA투어는 다음달 19일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열리는 볼빅파운더스컵으로 일정을 이어간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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