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만나 매출 폭발…"농심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입력 2020-02-17 17:23   수정 2020-02-18 00:49


55년 역사의 라면 회사 농심이 수출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1971년부터 해외시장을 두드려온 농심은 올해 모멘텀을 만났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다. 영화에 나온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면서 신라면 일변도에서 벗어나 시장을 더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농심은 올해 해외 매출 1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연매출 2조3439억원 중 50%가량을 한국 밖에서 올린다는 목표다.

농심은 1971년 라면을 처음 수출했다. 창업 6년 만이었다. 농심의 눈은 이후 늘 세계 무대를 향했다. 남극의 길목부터 알프스 최고봉에서까지 ‘신라면’을 팔고 있다. 해외에서의 성과는 느리지만 견고했다. 농심의 라면 수출액은 2004년 1억달러를 넘었고, 2015년엔 5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농심은 전체 매출의 약 40%인 8억1000만달러(약 9591억원)를 미국과 중국 등 해외에서 달성했다. 농심의 올해 해외 매출 목표는 전년보다 17% 증가한 9억5000만달러다.


신라면 전략 배우는 ‘짜파구리’

영화 기생충 신드롬은 농심의 해외 사업에 호재다. 아카데미상 발표 이후 농심 주가는 10% 이상 올랐다. 식품업계에선 ‘내수 시장 1등’의 자만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해외시장을 두드려온 농심이 또 한번의 도약을 위한 기회를 만났다는 말이 나온다.

농심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아카데미상 발표 직후 영화 기생충이 상영 중인 영국 모든 극장에서 ‘짜파구리’와 홍보물을 나눠주는 행사를 했다. 11개국 언어로 제작한 ‘짜파구리 레시피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미국 시장에선 ‘짜파구리’를 아예 완제품으로 만들어 컵라면으로 내놓기로 했다.

농심 관계자는 “신라면으로 100여 개국 시장을 30년 넘게 두드렸다”며 “수십 년간 구축한 영업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기회를 살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라면 맛 알리겠다”

농심은 국내 라면시장이 언젠가는 정체에 빠질 것으로 판단해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1980년대부터 “해외 어느 국가를 가도 신라면이 보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소고기라면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한 농심은 1980년대 수출 네트워크를 본격 구축했다.

1981년 일본 도쿄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했고, 1996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공장을 세웠다. 중국 공장을 세 개까지 늘린 뒤 2005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공장을 지었다. 현재 90% 이상 가동되고 있는 미국 제1공장으로는 물량이 부족해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서부 코로나 지역에 제2공장을 곧 착공한다. 라면을 수출한 지 올해로 49년째다. 농심은 현재 세계 100여 개국에 라면을 수출하고 있다.

스위스 최고봉 몽블랑의 등산로 매점과 융프라우 정상 전망대, 남아메리카 칠레 최남단 마젤란해협 근처의 푼타아레나스, 스위스 마터호른과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매점, 이탈리아 로마의 유엔식량농업기구 본부 면세점까지 진출했다.

올해는 미국이 승부처

농심의 해외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1000여 개 유통 네트워크로 중국 전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올해는 미국이 승부처다. 농심은 2017년 국내 식품기업 최초로 미국 최대 대형마트인 월마트 4600여 개 전 점포에 입점했다.

미 국방부와 의회의사당 등 주요 정부기관 매점에도 라면제품 최초로 입점했다. 새로 건설하는 미국 2공장에선 유탕면과 건면 설비를 갖춰 일반 라면부터 프리미엄 제품까지 생산하기로 했다. 새 공장이 완공되면 연 5억 봉지였던 미국 현지 생산능력은 10억 봉지로 대폭 늘어난다.

농심 관계자는 “2005년 LA공장을 가동한 뒤 10여 년간 동포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량을 늘려왔다면 지금은 동부와 하와이, 북부 알래스카까지 미국 소비자들이 먼저 찾는 브랜드가 됐다”고 설명했다. 대표 제품인 신라면은 지난해 미국에서만 3억달러어치 이상 판매됐다. 증권가에서도 농심의 해외사업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심은주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미국 사회 비주류에 속했던 아시아계 미국인이 주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이에 따른 인식 변화도 계속될 것”이라며 “2025년까지 아시안 푸드 성장률은 7.8%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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