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업계는 해마다 3조원대의 매출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됐다. 감소분이 영세상인·중소기업들의 영업호조로 이어졌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전통시장과 소형 슈퍼마켓 매출이 미미하게 증가하긴 했다. 하지만 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과 중소협력사들의 매출이 그보다 훨씬 많이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마트 휴업에 따른 소비자 후생감소는 별개로 쳐도, 중소·서민경제 활성화에 득보다는 독이 됐다는 것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조차 “우리 경쟁상대는 온라인”이라고 하는 마당에 단지 크다는 이유로 대기업을 규제한 결과는 외국자본의 국내 유통시장 잠식으로 이어졌다. e커머스 1위인 이베이코리아, 2위인 쿠팡은 모두 외국계 회사다. 유통공룡으로부터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웠지만 월마트 까르푸와 같은 글로벌 공룡으로부터 국내시장을 지켜낸 유통산업의 저력을 갉아먹고 만 결과다.
유통산업발전법뿐만이 아니다. 지금도 겹겹의 규제로 혁신이 좌절되고 신산업의 싹이 뭉개지는 일이 수없이 반복된다. 코로나19(우한 폐렴) 사태로 재평가받고 있는 원격의료는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합법이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모빌리티산업 등 급성장 중인 공유경제도 첫걸음부터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타다’가 대표적일 것이다. 정부가 소비자 후생과 산업 발전을 고민하기보다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며 미적거리는 사이에 타다는 불법딱지를 붙이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거대 미래산업이 될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다. 일단 금지하는 국내법의 규제를 피해 기술 테스트를 위해서라도 미국 등 해외에 법인을 세워야 하는 게 현실이다.
공정경쟁을 빙자해 가해지는 규제더미는 기업들의 숨통을 조인다. 인수합병을 통해 융복합 사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구글과 같은 행보는 한국에서는 지주회사법 규제 탓에 불가능하다. 유튜브 등 해외 거대 사업자가 독점력을 행사하며 콘텐츠산업 환경이 급변 중이지만 한국은 가입자 점유율 같은 해묵은 잣대로 재단하는 게 현실이다. 동일인(총수) 지정자료 허위제출 혐의로 네이버 창업자를 검찰에 고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 역시 34년 된 낡은 규제에 기초한 것이다.
혁신성장을 말하는 정부가 규제에 관한 한, 과거보다 더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듯해 실망스럽다. 한국판 CES 개최를 밀어붙이다 우한 폐렴에 밀려 슬그머니 그만둔 것도 바로 엊그제 일이다. 오죽 답답하면 벤처기업인들이 규제개혁당을 만들겠다고 나섰겠나. 산업발전법이 산업발전금지법이 되고 마는 나라에서 제대로 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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