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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교육 분야에도 당연히 새로운 교육방법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선생이 출장 중이라도 연주회나 콩쿠르를 앞두고 레슨이 절실한 학생들에게 화상채팅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응급레슨’도 할 수 있다. 대학 1학년 때 실기시험 곡으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4번을 쳤던 적이 있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곡이 아니겠지만, 당시에는 실기시험 연주 후 한 교수님이 그 곡 악보를 보고 싶어 했을 정도로 새로운 곡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었다. 이 곡의 음반을 딱 한 번만이라도 들어보는 것이었다. 수소문 끝에 한 지인을 통해 일본에 주문했는데, 결국 이 음반은 3개월 후에 도착했다.
유학 시절 뉴욕 카네기홀에서 금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독주회를 봤을 때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레코드 커버로만 보던 사람을 실물로 보다니 말이다.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없을 요즘 학생들이 불쌍해지기까지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치는 곡을 음반이나 영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연주자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까지 있다. 이런 현상이 선생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제는 더 이상 곡을 가르치는 선생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에둘러서 나는 ‘곡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친다’라고 표현한다.
가르치다 보니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연주할 때 급해지는 습성이 있는 학생은 나와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리듬이 빨라진다. 또 정리가 안 되고 부산한 연주를 하는 학생은 레슨을 끝내고 보면 항상 귀고리 한쪽 아니면 손수건이라도 반드시 피아노 위에 두고 간다. 목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작게 이야기하는 학생은 반드시 소심한 연주를 한다.
나는 결국 사람은 생긴 대로 연주하는 것이라고 믿게 됐다. 이제 선생이 해야 할 일은 각각의 학생 본성을 파악해 필요한 점을 보완해주는 맞춤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의식 세계와 접속해 무의식 세계를 수정해야 하는, 어렵고도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연주는 무의식의 행위라 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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