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는 질병 예방의 목적도 있지만, 신분과 정체를 감추거나 다른 것으로 꾸미기 위한 의도로도 사용된다. 고대 연극에서 등장인물을 강조해 표현하는 데 마스크를 쓰고, 더러는 악귀를 쫓거나 예배를 드리는 제사의식 등에도 마스크가 사용됐다는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 역병이 돌 때는 요즘처럼 의사들이 가면 형태의 마스크를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마스크(가면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객관성이 있겠다)는 다양한 공연 문화에 쓰였다. 연극은 물론 축제, 발레 등 무대 공연에 마스크가 사용됐고, 오페라에서도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는 이야기의 정점에 가면이라는 소품을 배치해 내면을 가리고자 하는 인간의 양면성을 부각했다. 스웨덴 국왕 암살이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오페라는 1700년대 관세를 철폐하고, 경제·문화를 부흥시킨 스웨덴 왕 구스타브 3세 저격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구스타브 3세는 자신의 친구이자 충직한 신하인 레나토의 부인을 연모했다. 하지만 이 둘은 부도덕성을 자각하고 서로의 자리에 충실하려고 하는데, 그만 레나토가 둘의 관계를 알게 된다. 구스타브 왕과 적대관계에 있는 무리와 손을 잡은 레나토는 가면무도회에서 왕의 가면이 무엇인지 알아내 친구이자 자신이 섬기던 왕을 살해하고 만다. 구스타브 왕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백성에 대한 애정을 전한 채 숨을 거둔다. 절친한 친구이자 충직한 신하, 한 여자의 남편, 백성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다양한 사회적 모습을 한 인간 내면의 라이벌 의식, 피 끓는 애증, 연약한 도덕성 등 ‘진짜 얼굴’에 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는 아름다운 선율뿐만 아니라 영상미로도 클래식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호세 반 담이라는 당대 걸출한 성악가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점이 특별하지만 무엇보다도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음악 선생’이 원래 제목인데 극 중 주인공인 성악가 조아킴의 마지막 독창회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가의 마지막 무대 그리고 병환으로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선언은 팬과 관객을 당황케 한다. 하지만 이 음악가 앞에 노래에 재능이 있는 젊은 부랑아가 나타나고, 조아킴은 그를 훌륭한 성악가로 키워낸다.
그때 자신의 라이벌인 동료 역시 제자를 길러 이 둘은 경연대회에서 맞붙는다. 경연 과정에서 두 제자의 음색이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대회 주최자는 두 사람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해 우승자를 가리자고 제안한다. 고난도의 노래를 부른 조아킴의 제자가 결국 우승하는데 그가 가면을 벗고 기쁨을 누리려는 순간 스승인 조아킴은 예술에 감사하며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오페라나 영화 이야기 같지는 않지만, 코로나19 공포로 얼굴을 가린 거리의 마스크를 볼 때마다 꽃샘추위처럼 시린 마음이 든다. 이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해 봄기운과 함께 사회가 안정됐으면 좋겠다.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마스크 대신 사람들의 밝은 얼굴로 어서 거리가 채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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