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셋째 아이를 낳았지만 부부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또다시 갓난아기를 방치했다. 태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셋째 역시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숨을 거뒀고, 이들은 둘째 아이를 묻은 곳에 셋째 아이도 묻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동의 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등록되지 않은 아동'이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이 출생정보를 국가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모가 출생신고 안 한 '유령 아동' 국가 보호 못 받아
'원주 삼 남매 가정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이 지난해 처음 실시한 '만 3세 아동 소재·안전 전수조사'에서 적발됐다. 경찰은 출생신고가 된 이들의 5살 첫째 아이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로 부부를 조사하다가 둘째와 셋째에 대한 범죄 혐의도 확인했다. 최근 경찰은 아버지 A씨의 친인척 묘지 인근에서 봉분 없이 암매장된 영아 2명의 시신을 찾았다.
이에 시민단체 세이브더칠드런과 굿네이버스, 기아대책,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월드비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 21개 아동인권 관련 단체들은 지난 19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아동의 출생을 의료기관이 국가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했다.
국내에서는 현행법상 부모에게 아이의 출생신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원주 삼 남매 가정 사건' 처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는 학교에 다니지 못할 뿐 아니라 학대와 영아매매, 방임 등의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없다.
단체들은 "원주 삼 남매 가정은 부모가 고의로 아동의 존재를 은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생존자인 첫째 아이가 아니었다면 출생 신고조차 안 된 '유령 아동'이었던 셋째 아이는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남부지법에서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신생아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유기치사)로 부부가 기소된 사건이 선고를 남겨놓고 있다. 자백한 어머니 조모(41)씨에 따르면 이들은 2010년에 딸을 낳았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예방접종을 한 차례도 하지 않는 등 방치했다. 결국 아이는 고열 등으로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숨졌다. 그러나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어떤 기관도 이 사실을 몰랐다. 현재 아이 아버지 김모(43)씨가 잠적해 선고가 미뤄진 상태다.
◆미국·영국 등 해외에선 병원이 국가에 출생통보
미등록 아동의 학대 사건을 막기 위해 유엔은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7조에서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호주와 독일 등에선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 외에 의료기관 등이 출생 사실을 정부에 통보할 의무를 갖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등 국제사회도 한국 정부에 이같은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모가 출생신고를 전담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이 나오자 지난해 5월 정부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료기관이 태어나는 아동을 누락 없이 국가기관에 통보하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최근 법이 개정돼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장도 부모 대신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어떤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출생통보제 도입에 대한 관계부처 간 협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은 아동학대와 유기 등의 상황에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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