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투표를 바라보는 상장사의 속내

입력 2020-02-25 13:52   수정 2020-02-25 13:54

[02월 25일(13:52) '모바일한경'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모바일한경 기사 더보기 ▶



(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입니다. 주총 시즌이면 고질적으로 나오는 문제가 바로 의결 정족수 부족입니다. 일단 주총에 일정 수준의 주주들이 참석해야 안건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안건을 상정해야 통과를 시키든, 부결을 시키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아예 주주들이 참석조차 하지 않으면 주총 자체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기업의 경영 전략이나 지배구조 보다 단기 주가에 관심이 많은 개인 주주들이 주주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면 주총 참석율을 높이는 건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항상 주총 시즌에 부각되고 있는 게 전자투표입니다. 주총장에 오지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자는 겁니다.

경제계 안팎의 관심이 쏠린 한진그룹에서도 전자투표는 이슈입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은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반(反) 조원태 3자 연합(조 전 부사장, KCGI, 반도건설)은 지속적으로 한진칼과 한진의 이사회를 상대로 전자투표 도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주주들의 건강과 안전을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또 주주 권리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일각에서는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 비율이 높아지면 조 전 부사장 측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그렇지만 전자투표도 뚜렷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전자투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 없이 의결권을 간편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부각됩니다. 주주 중시의 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섭니다.

해당 상장사의 이미지도 좋게 하죠. 최근 대기업그룹 계열사들이 앞다퉈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자투표의 실표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습니다. 상장사 입장에서는 무용한 업무가 늘어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과거와 비교해 많은 상장사들이 주주에게 전자투표 기회를 주고 있지만 실제 행사율은 낮다는 게 주된 근거입니다. 그만큼 실효성이 미약하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오히려 경영권 분쟁 등 첨예한 이슈가 있을 때 개인 주주들이 결집하거나, '묻지 마 반대' 의결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상장사들이 꺼리는 측면도 있답니다. 해킹, 시스템 에러, 명의 도용 등의 문제도 여전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주총 결의에 대한 신뢰성이 하락하고 소송 분쟁의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은 전자투표를 활성화하고 있지만 상장사의 자율적인 사항으로 맡겨 두고 있습니다. 보안이나 해킹 관련 부담을 상장사 스스로 선택하게 한 것이죠.

가장 큰 단점은 충분한 토론이 불가하다는 겁니다. 전자투표가 현장 주총 개최 전에 행해지기 때문에 상황 변화나 새로운 정보가 반영되기 어렵습니다. 질의나 응답, 토론 등이 어려운 상황에서 투표권이 행사되기 때문에 풍문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정보통신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노약자, 저학력층 등 일부 주주가 쉽게 참여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모든 시스템이 그렇듯 효율적으로 최선의 효과를 내기 위한 깊은 고민이 항상 필요한 듯 합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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