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차 노조가 파업기간 상여금을 모두 지급하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출시를 앞둔 신차 XM3의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 노조원 사이에서도 집행부를 잘못 선출했다는 자성론이 나온다.
2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차 노조는 신차 XM3 출시에 맞춰 파업을 추진하고 있다.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XM3도 중요하지만 파업을 진행하자", "파업 안하고 뭐하나", "부품 수급 기다리지 말고 파업하자", "시민단체와 연대하자" 등의 주장을 노조원에게 전했다. 또한 이러한 주장을 반영해 쟁의대책위원회 등에서 판단을 내리겠다며 파업 의지를 밝혔다.
르노삼성은 3월 9일 신차 XM3를 출시할 예정이다. XM3는 르노삼성이 쪼그라든 내수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준중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이다. CUV에 익숙하지 않은 국내 소비자를 감안해 '프리미엄 디자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홍보된다. 생산절벽을 극복하기 위해 연 9만대 규모의 유럽 수출물량 수주도 추진 중이다.
◇ 파업 재차 노조…흥행 절실한 XM3가 인질
르노삼성 노조가 출시를 앞둔 신차를 인질로 삼아 재차 파업을 준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상여금이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6월 노사가 합의한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근거해 지난해 12월 약 일주일 동안 벌어진 파업 참가 시간만큼 삭감된 2월 상여금을 지급한다고 노조에 알렸다. 처음부터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근로자가 상여금을 모두 받는다면 파업에 꾸준히 참가한 근로자는 일주일치를 차감한 금액을 받는 셈이다.
노조는 "파업 참여 시간을 120시간으로 가정할 경우 약 40만1620원을 덜 받게 된다"며 "파업을 하더라도 관행으로 100% 지급하던 상여금에 차이를 발생시킨 것은 파렴치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다만 실제 차감 시간인 56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파업에 모두 참여한 근로자가 덜 받는 금액은 18만7500원 수준에 그친다. 파업 참여를 중도에 멈추고 생산현장에 복귀했다면 차감액은 더욱 줄어든다.
상여금은 일정기간 동안의 근로자의 성과나 근무태도를 평가해 반영해 지급하기에 명확한 평가기준이 있다면 지급액에 차이가 발생해도 무방하다. 르노삼성 노조는 "파업을 하더라도 상여금은 100% 지급하는 것이 관행"이라며 법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사측은 "지난해 6월 2018년 임단협을 타결하며 노사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도 합의했다. 파업이 벌어지자 휴일에도 근무하며 생산량을 조금이라도 늘리려 노력한 이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노조가 XM3 출시에 맞춘 파업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노조원 사이에서는 공멸의 공포가 감돌고 있다. XM3 유럽 수출물량 수주에 실패하면 르노삼성의 생산량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데, 이럴 경우 대규모 구조조정도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 구조조정 원하는 르노그룹…막을 명분 사라질판
르노삼성은 2018년 21만대를 생산했지만, 닛산 로그 위탁생산 축소와 종료에 따라 지난해 생산량은 16만5000대에 그쳤다. 그나마도 올해는 10만대 수준으로 위축될 전망이다. 때문에 르노삼성은 연 9만대 규모의 XM3 유럽 수출물량 수주를 추진했지만, 르노그룹에게 반복된 노조 파업과 임금 인상으로 인한 생산성 하락을 지적받으며 아직까지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르노삼성을 방문한 르노그룹 2인자 호세비센테 데로스 모소스 부회장은 "시간 대비 생산비용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제품 납기도 하위권"이라며 XM3 수출물량을 확보하고 싶다면 노사 분규부터 해결하라는 최후통첩을 남겼다. 최후통첩에도 파업을 반복한다면 XM3 수주는 사실상 어려워질 전망이다.
르노삼성의 시간 대비 생산비용은 르노그룹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고정급 인상은 없었지만 파업으로 인해 생산시간이 줄었고, 격려금 등 일회성 비용 지불이 꾸준히 발생한 탓이다. 때문에 르노그룹은 스페인 공장에서 수출물량을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XM3 유럽 물량 수주가 실패하면 르노삼성의 생산량이 2018년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이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르노그룹은 1800명 수준인 르노삼성 생산직 근로자 가운데 절반인 900명 정리해고를 요구하고 있다. 르노삼성이 지난해 10월 시간당 생산량(UPH)을 60대에서 45대로 줄이고 상시 희망퇴직 접수를 받는 것은 이러한 르노그룹의 구조조정 입김을 최대한 줄이려는 조치였다.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르노삼성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저지할 명분도 사라진다. 생산량 감소에 맞춰 UPH 45대를 유지하면서 부산공장을 1교대로 전환하면 생산직 근로자 1800여명 가운데 900명은 잉여인력이 되기 때문이다.
◇ 르노삼성만 노사 갈등 반복…노조원도 자성론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갈등을 반복하는 노사는 르노삼성이 유일하다. 대표적인 강성노조로 분류됐던 현대차 노조는 자동차 시장 불황과 전기차 전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의 상황을 감안해 투쟁을 접고 실용 노선으로 기조를 바꿨다.
지난해 자사 불매운동도 벌였던 한국GM 노조는 신차의 흥행과 회사의 생존이 먼저라며 신차 트레일블레이저 발표를 함께 진행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상여금 200%, 생산격려금 등의 임금을 반납해 1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마련하고 회사 정상화에 사용하기로 했다.
노조원 사이에서는 집행부를 잘못 뽑아 노사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자성론이 나온다. 근무강도 개선 등의 공약을 내세워 노조원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정작 뽑고나니 노조원들의 목소리는 외면한 투쟁만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르노삼성 노조 파업 참가율은 초기 40%를 넘기는 모습을 보였지만 점차 낮아져 마지막에는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8년만 하더라도 60여차례 진행됐던 부분파업 참가율이 평균 66%였던 것에 비하면 크게 낮아진 수치다. 지난해 6월 파업도 노조원들의 보이콧으로 중단된 바 있다.
한 르노삼성 노조원은 "집행부를 선출할 당시만 하더라도 일자리 보장, 근무환경 개선 등 실생활에 밀접한 공약들이 제시됐지만 당선되고 나니 뒷전으로 밀렸다"며 "최근에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신차 출시를 앞두고 파업을 조장하는 문건을 배포하는데, 이는 근로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자리 보장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무리한 싸움만 반복한 탓에 이행된 공약은 없고 회사 분위기만 나빠졌다. 노조원들 사이 평판도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현 집행부 임기가 올해 10월이면 끝나다 보니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더 무리수만 두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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