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그렇듯 일생에서 가장 큰 결정은 전공을 정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퇴임을 준비하면서 ‘그때 왜 나는 임상의사의 길을 마다하고 생화학을 택했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소설 《광장》이 떠올랐다. 소설 첫머리에 쓰인 몇 줄의 문장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줬다.
“세상에는 많은 풍문들이 있습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사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풍문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운명을 만납니다. 우리는 그곳을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 스타일’로 나의 이야기를 쓴다면 다음과 같다. “내가 들은 풍문은 ‘DNA가 세상을 구할 것’이란 얘기였다. 나는 DNA를 전공하기 위해 생화학을 택했다. 생화학교실에서 게놈DNA를 공부하며 나의 길을 시작했다. 그 길에서 만난 모든 인연은 결국 나의 운명이 됐다.” 잡스의 말처럼 풍문과 확인, 도전과 그 이후의 운명적 만남 등은 마치 예정됐다는 듯이 실행된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이 일어났어야 했던 일이란 것을 알게 된다.
두 번째 큰 일은 교수로서 벤처를 세운 것이다. 마크로젠을 창업하고 23년간 운영한 것은 내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1990년대 큰 규모의 정부연구비를 받으며 꽤 큰 연구팀을 운영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정부는 대형 연구과제 책임자들을 회사 창업으로 유도했다.
마크로젠이 없었다면 대형 연구인 게놈 연구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14편에 이르는 네이처와 자매지 출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추진하는 빅데이터에 의한 의학정보혁명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 일이 나에게서 왜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됐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일 중에 태극권 수련이 있다. 20년 정도 수련하며 그 창시자들을 존경하고 감탄하게 됐다. 비록 비제도권이긴 하나 인류의 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앞으로 도가의 이론과 병행해 수련해나갈 작정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때가 되면 우리는 왜 그 일을 해야 했는지 다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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