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크푸드가 점령한 밥상…풍족하지만 부실해졌다

입력 2020-02-27 17:50   수정 2020-02-28 02:58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저명한 영양학자 배리 팝킨은 2009년 출간한 책 《세계는 뚱뚱하다》에서 비만은 굶주림보다 심각한 세계적 문제라고 지적해 주목받았다. 그는 가난한 국가들이 점차 부유해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식단의 변화와 그 결과를 ‘영영 전이’라고 불렀다. 어떤 나라든 부유해지고 세계 시장에 문을 활짝 열수록 그 나라 국민이 먹는 음식이 크게 달라져 다수의 질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기름, 육류, 설탕, 스낵을 더 많이 먹고 통곡물과 콩류는 더 적게 먹게 된 결과다.

케임브리지대 박사 출신인 영국 음식 전문 저널리스트 비 윌슨은 유사 이래 인간이 겪어온 식단 변화를 네 가지 단계로 분류한다. 자연에서 구한 녹색 채소와 베리류, 수렵·채집시대가 1단계, 곡물을 주식으로 삼으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한 농경시대가 2단계, 윤작과 비료 등 농업기술이 발전해 다채롭고 풍성한 식단을 짜게 된 ‘기근 감퇴’의 시대가 3단계다.

인류가 현재 위치한 4단계는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가 기계화되면서 육체노동은 줄어든 대신 지방과 육류, 설탕은 더 먹고 섬유질은 훨씬 덜 먹게 됐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최고치를 찍었지만 식단과 관련된 만성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 또한 이례적으로 증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년간 서구 사회 전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고 지금은 저소득 국가 또는 중간소득 국가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다.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 윌슨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모든 사람이 굶주림이나 질병 없이, 과하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다섯 번째 단계로 이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탐구한다.

5단계로 가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저자가 5단계 이름으로 삼은 ‘행동의 변화’다. 저자는 지역과 국가를 막론하고 고유의 다양한 음식문화를 상실한 채 ‘세계 표준화’된 식단이 지배하는 인류 식문화의 역사와 현주소, 문제점과 대안을 두루 짚으면서 행동의 변화를 촉구한다. 그 변화는 개개인의 현명한 선택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개편까지 포함한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담배나 술보다 질병과 죽음을 더 많이 유발한다. 2015년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700만 명, 알코올 관련 사망자는 약 330만 명이다. 반면 채소와 견과류, 해산물이 적은 식단과 가공육, 가당 음료가 과다한 식단처럼 ‘식이 요인’으로 사망한 사람은 1200만 명에 달했다. 전염병이나 결핵을 두려워했던 조상들과 달리 이제 전 세계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식습관이라는 지적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싱싱하고 다양한 음식을 1년 내내 거의 무제한으로 즉시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즉시성과 보편성은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2006년 처음으로 전 세계 과체중 인구가 영양 부족 인구를 앞질렀다. 먹을 것을 충분히 구하지 못한 인구는 8억 명인데 과체중이거나 비만한 인구는 10억 명을 넘었다.

더욱 큰 문제는 수십억 명이 너무 많이 먹는 동시에 영양이 부족하다는 것. 굶주림은 사라졌지만 세계 인구 세 명 중 한 명이 다양한 형태의 영양 부족을 겪고 있다. 과식과 영양 부족이 동시에 나타나는 ‘풍요 속 빈곤’이다.

문제의 근원은 세계화된 식단이다. 설탕과 정제 탄수화물로 가득한 대신 철분, 비타민 같은 미량영양소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가공육, 스낵 브랜드 등 지방과 설탕, 소금, 싸구려 기름이 가득한 ‘나쁜 음식들’이 식탁을 점령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소비하는 속도보다 건강에 나쁜 음식이 훨씬 빨리 식단을 장악하면서 초래한 불균형도 문제다.

어떻게 변화를 이룰 것인가. 저자는 우선 현재 4단계로 이행 중인 나라들의 ‘영영 전이’ 커브를 건강한 식사 패턴 쪽으로 꺾어야 한다며 그 해답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4단계로 이행했으나 상대적으로 식단이 건전한 편이다. 육류 소비량이 크게 늘었지만 채소 소비량이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소를 몸에 좋은 것으로만 여기는 서구와 달리 한국인은 맛있는 음식으로서 선호하기에 300가지 이상의 채소로 요리를 즐긴다는 것. 채소 요리의 최고봉인 김치는 부식이 아니라 주식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예찬한다.

5단계로 가기 위한 가능성은 덴마크에서 찾는다. 성인 대다수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건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맛있는 요리를 중심으로 음식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것. 덴마크 정부가 2016년부터 학교와 병원 등 공공기관에 제공하는 음식은 식재료의 60% 이상을 유기농으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한 점도 눈여겨봤다.

결국 보다 건강한 음식 문화를 형성하려면 개개인의 현명한 선택과 각국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또 음식 만들기와 식사에 대한 관념을 바꿔 정크푸드와 패스트푸드에 자리를 내준 집안에서의 요리와 식사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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