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16 대책’이 나온 지 2개월도 지나지 않아 ‘2·20 대책’이 또 나왔다. 그동안 초고강도 대책으로 손꼽히던 ‘8·2 대책’과 ‘9·13 대책’도 효과는 6개월을 넘기지 못했는데 말이다.
12·16 대책 이후 부동산시장은 15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와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 9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시장으로 확연히 구분됐다. 특히 9억원 이하 아파트로 쏠림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15억원 이상 아파트는 대출이 한푼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가격대, 그리고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으로 투자수요가 쏠리면서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규제의 ‘풍선효과’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이유는 뭘까. 대책이 나오면 조정 국면이 잠시 이어질 뿐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뭘까.
추세가 상승 흐름인 영향이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선 각종 규제에도 시장이 좀체 꺾이지 않는다. 반대로 하락 추세라면 정부가 부양책을 편다고 하더라도 하강을 면치 못한다. 다르게 말하면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일방적인 규제를 한다고 해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큰 폭의 집값 상승이 무주택 서민들에게 커다란 상실감을 주는 데다 최근 집값 폭등이 우려할 수준이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집값을 잡기 힘들다는 건 부동산 전문가들도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병원에서 환자의 병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한다면 처방전 또한 잘못될 수밖에 없다. 투기꾼들이 집을 마구 사들여 집값이 올랐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하지만 정부의 진단대로라면 집값은 벌써 진정됐어야 한다. 3년 가까이 집중 규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답은 유동성이다. 시중에 단기 부동자금은 약 1200조원으로 추산된다. 올해 국가예산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다른 자본시장에 흘러들어갔어야 할 돈이지만 경제 위축으로 부동산시장 쏠림이 심해지는 중이다.
이 같은 유동성이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과 합쳐지면 규모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토지보상금은 약 45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가격이 오르는 곳을 규제로 묶었으니 규제가 없는 지역에서 풍선효과가 나타날 게 뻔하다.
그동안 서울의 집값이 왜 올랐는지 근본적인 문제부터 생각해보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까닭이다. 서울에 새 집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건축과 재개발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지만 지하방이나 낡은 집은 수요자들이 원하는 집이 아니다. 양적인 주택시장이 아니라 질적인 주택시장으로 전환된 지 오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경제 충격이 커지면서 앞으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넘치는 유동성과 저금리 상황에서 부동산가격은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규제로 촘촘히 막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공급대책이야말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올바른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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