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들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으나 곧 기회가 왔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논란이 벌어지면서 의결권 자문사 역할이 부각됐다. 이 해부터 국민연금이 공식적으로 의결권 자문사를 선정했다. 2018년 국민연금이 KCGS가 설계한 한국 스튜어드십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고, 이듬해 대한항공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면서 자문사 영향력은 한층 커졌다.
하지만 국내 의결권 자문사의 역량과 공정성을 감시하는 곳은 아직 없다. 의결권 자문업을 투자 자문업으로 분류해 관리·감독하면서 조직과 인력현황, 이해상충 여부, 의안분석 방법론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미국과 다른 점이다. 국내 업체들은 컨설팅업체 또는 여론조사업체로 등록돼 있어 재무제표 외에는 별다른 공시의무가 없다. 회원사가 어느 곳인지, 평가 대상인 기업과의 이해상충 문제는 없는지, 의사 결정 과정은 어떠했는지 등 핵심 정보가 모두 ‘깜깜이’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작년 11월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제도에 대한 개정안을 발표했다. 의결권 자문사의 공시 의무를 더 강화하고 보고서 발표에 앞서 기업들의 의견을 듣는 피드백 기간을 마련하라는 내용이다. 상장기업의 의견을 더 귀담아 들으라는 취지다. 주총 때마다 상장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를 찾아가 로비를 벌이는 폐단을 줄이려는 것이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자문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다”면서도 “사업보고서 제출 전 주총을 열도록 하는 현행 제도 아래에선 80% 이상의 주총이 3월에 몰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기업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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