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기업들 로펌에 문의 쇄도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로펌엔 중국 업체의 납기 지연으로 손해를 본 국내 기업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중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현지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이를 재가공해 미국 등에 수출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국내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는 중국 조선소들이 거의 다 일시적으로 문을 닫게 되면서 국내 조선사들도 선박 건조 지연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향후 선주와의 계약 불이행 리스크에 따른 법률 자문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항공사는 중국 관련 노선 운항이 잇따라 중단되고 아시아 항로(인트라 아시아)를 운항하는 국내 해운회사들도 물동량이 급감해 이들 회사를 컨설팅하는 로펌들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한 해상 전문 변호사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 한국과 중국의 수출입 선박에 각국의 검역 절차가 강화됐다”며 “해외 항구에서 컨테이너 화물 운송작업이 지체돼 화주로서 체선료(정박료) 부담도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한 중소로펌엔 마스크와 관련한 법적 문의가 쇄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로펌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마스크 공급보다 수요가 폭증하면서 한국 마스크 제조업체를 상대로 중국 구매업체들이 ‘왜 납기를 제때 못 맞추냐’며 법적 분쟁이 벌어질 조짐”이라며 “제조업체가 이미 민간업체와 계약했는데 정부기관에서 갑자기 이를 사겠다고 나서 계약 파기가 가능한지를 묻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중국 외 국가에선 ‘인정 판례’ 적어
앞으로 기업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직간접적인 손실이 누구 책임이냐’를 두고 국제 소송 및 중재 등을 통해 법적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법원에선 코로나19를 불가항력으로 보고 적극적인 면책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앞서 중국 법원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대해서도 불가항력으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중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코로나19 피해 업체에 계약불이행에 따른 책임이 없음을 입증하는 ‘불가항력증명서’를 발급해주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상하이사무소의 김성욱 변호사는 “중국 우한시의 교통 통제, 설연휴 연장으로 인한 정부 부서 휴무, 공장 조업중단 명령, 관련 업계의 특별 조치 등과 관련해 정부 또는 관련 기관의 명령 행정조치들로 인해 계약상 채무의 이행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 불가항력 사유에 해당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증명서는 중국 내에서만 효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재판부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로펌 국제통상 변호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에 대해선 법조계 전망이 엇갈린다. 법무법인 세종의 한 변호사는 “건설 보험 해상분쟁의 준거법인 영국법 판례를 보면 불가항력에 대해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중국 이외 국가의 국제 소송에서 전염병 또는 질병의 확산을 불가항력으로 인정한 전례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정부의 조치나 명령이 있었다면 불가항력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아시아나 등 민감업종 M&A 흔드나
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피해가 큰 상황임을 감안할 때 불가항력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상사중재원 관계자는 “요즘 무역업체의 질의가 많아지고 있는데 과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마찬가지로 불가항력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한 변호사는 “불가항력에 대해 일률적인 흐름을 보인다기보다 각국 재판부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출 등 금융권과 차입거래에 대해선 예외없이 불가항력 인정이 불가능하다는 게 로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코로나19는 항공 해운 여행 등 코로나 민감업종 M&A 시장도 뒤흔들 전망이다. 한 대형로펌 기업자문 변호사는 “통상 M&A 계약서엔 거래의 선결 조건으로 ‘중대한 부정적 영향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중대한 부정적 영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아시아나항공 M&A 계약에도 이 조항이 있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로펌들의 노동팀도 바빠지고 있다. 일부 건설현장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공사 중단이 속출하면서 건설회사 하청업체와의 계약관계, 근로자 처우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김동욱 세종 노동팀 변호사는 “단순 코로나19 의심자는 회사가 강제로 연차휴가를 쓰게 할 순 없고 독려할 순 있다”며 “강제로 휴가를 쓰게 할 경우 휴업수당을 줘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확진자의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비용 지원을 받고 유급 또는 무급 휴가를 쓰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불가항력
태풍 홍수 지진 등 천재지변과 전쟁 또는 정부 간섭 등 계약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계약 이행 책임을 없애주거나 연기해주는 상황.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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