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초강대국 미국에는 한 가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특징이 있었다. 초강대국이면서도 세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자신의 거대한 힘을 세계가 글로벌 공동체로서 공존·공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쏟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무려 164개국이 참여하는 세계무역기구(WTO), 192개국이 참여하는 기후변화협약 등이 상징하는 세계화 과정은 세계를 문자 그대로 하나로 작동하는 지구촌을 일구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해왔다.
그런데 미국의 이 근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를 위한 미국’이 아니다. 도리어 ‘미국을 위한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작품이다. 트럼프는 한마디로 평생을 미국만을 알면서 살아 왔고, 또 장사꾼으로 살아 온 사람이다. 그에게 세계는 별 의미가 없다. 한마디로 그는 세계주의자가 아니라 국수주의자다. 지금 세계는 트럼프의 이 국수주의에 적응하느라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동맹을 무시한다. 이미 유럽과는 상호 냉정하게 된 지 한참 됐다. 트럼프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6대 강대국의 합의로 이룬 이란과의 핵 협정을 그들과 한마디 의논도 없이 파기해 버렸다. 미국이 주도해 192개국이 천신만고 끝에 이룬 기후변화협약도 한마디 의논도 없이 하루아침에 탈퇴해 버렸다. 수십 개국 총리, 국방장관이 모인 유럽연합(EU) 안보회의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연설에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을 정도다.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트럼프 패러다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이에 가장 곤혹스러운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의 탄생과 존속 자체가 애초 미국의 과거 글로벌리즘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이 풀어야 하는 방정식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렵다. 핵 보유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분단 한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과 중국의 도움을 동시에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독특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 두 나라가 상호 적대적이다. 미국의 이해관계가 심하게 걸린 북한 변수도 작용하고 있다. 참으로 어렵다.
해법의 핵심은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의 글로벌리즘이 아니라 ‘내셔널리즘’에 호소해야 한다. 한국이 원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적 이익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를 제대로 만들어, 제대로 전파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
이런 논리개발·설득·전파는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다. 필자가 워싱턴DC에서 통상 변호사로 활동할 때의 경험을 보면 워싱턴DC에는 그런 일을 도와 줄 수 있는 전문가가 많다. 그 전문가들을 활용해 논리를 만들고, 또 전문가를 써서 전파해야 한다. 불행히도 한국이 지금 미국에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징후는 거의 없다. 한반도에 관한 칼럼을 쓰는 사람 하나도 찾기 어렵다. 여론의 전당에서 한·미 간 이해의 접점을 찾아 이으려는 노력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 내셔널리즘으로 갈수록 한국은 더 적극적이고 전문적으로 미국에 접근해야 한다. 한국 정부에서 누가 이런 문제를 이런 시각으로 보고 신경을 쓰고 있는가? 행동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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