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등학교 아들의 입학을 앞두고 이사를 한 박모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집을 보기조차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전세금 잔금을 치르면서 부동산 중개인은 "미리미리 집을 구해서 다행이네요. 지금은 보는 거 자체가 어렵다보니까 날짜 오는 세입자들은 초조해 합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는데다 초·중·고교의 학사일정이 오는 23일부터로 연기되면서 세입자들이 비상이다. 여름방학 일정이 불투명해지면서 전학이나 이사 등을 쉽게 결정할 수 없어서다. 집주인도 세입자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집을 내놔도 보러오는 사람이 없으니 애만 태우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 있는 김모씨는 출산을 앞두고 이사를 준비하다 날벼락을 맞았다. 그는 "첫째도 맡겨야하고 산후조리도 해야해서 서울의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갈 예정이었다"며 "임신부다보니 사람들을 들이기도 그렇고 이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집주인에게 연장계약과 친정어머니에게 내려오실 것을 부탁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태다.
◆방학 때 이사준비했는데, 방학은 언제인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오는 6월부터 새 아파트에 입주를 앞두고 있는 김모씨도 고민이다.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을 빼서 잔금을 치르고 입주할 예정이었지만, 집을 내놓은지 한달이 다 되도록 나가지 않고 있다. 최근 2주 동안은 전화마저 없었다. 그는 "현재로써는 입주를 미루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날짜가 다가올수록 초조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의 전학도 2학기에 맞춰서 할 예정이었는데, 개학이 미뤄지면 어떻게 되는 거냐"며 "집도 안나가고 이삿날 맞추기도 힘들고 계획이라는 걸 할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난감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매매거래는 거래절벽 수준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문제는 전월세 거래인데, 날짜가 다가오는 와중에 문의도 없고 집도 보러오지 않으니 집주인이건 세입자건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집주인이나 세입자 모두가 여유있는 경우라면 나은 편이다. 집을 내놨다가 다시 거두고 자연스럽게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러나 집주인이 직접 들어가려는 경우나, 전세금을 빼서 이사를 가려는 세입자들 사이에서는 분쟁이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아파트 거래량 급감, 집주인-세입자 '갈등'
실제 부동산 거래량은 올해 들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12·16대책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다. 서울의 경우는 거래절벽 수준으로 떨어졌다.
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의 2월 아파트 매매량은 계약일 기준으로 3827건이었다. 이는 지난 1월(5970건) 대비 35% 감소한 수준이다. 보통 2월의 거래량은 설연휴가 겹치면서 감소하곤 했다. 올해에는 설연휴가 1월이었던 점을 감안해도 급격히 떨어진 셈이다. 전월세 거래량도 줄어 8796건으로 전월보다 17% 가량 감소했다.
작년 12월과 비교하면 더 심각하다. 서울에서 작년 12월 매매거래는 9593건, 전월세 거래는 16420건이었다. 2개월 사이 매매는 60%, 전월세는 46%의 거래량이 쪼그라들었다.
입주 아파트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코로나 19 심각 상태의 격상에 따라 입주민 행사를 통제하는데다, 사전점검과 이사 등의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입주 아파트는 입주자 외에도 인테리어, 이사, 부동산 중개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곤 한다. 그만큼 코로나19의 위험도가 높을 수 있다보니 현장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입주연기 불가피한데, 지원책은 없어
서울 영등포구 ‘문래 롯데캐슬’이 영등포구청의 권고로 입주자 사전점검일과 보증금 전환계약일을 연기했다. 동작구 ‘사당 롯데캐슬 골든포레’는 입주예약 숫자를 조절해 이사하는 인원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있다. 입주를 앞둔 다른 아파트들도 이사 일정과 기존의 집이 빠지지 않는 점을 감안해 건설사나 조합에 입주 예정기간을 연장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입주기간이 연장되면 추가로 발생되는 이자는 건설사나 시행사가 부담해야 한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까지 동원하면서 소상공인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국민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주택'에는 지원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계약을 연장해줘도 딱히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입주기간을 늘려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임대료를 내려받는 건물주에게 내린 임대료의 절반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등 임대료 지원을 약속했다. 상반기 6개월 동안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임차인의 임대료를 내리는 임대인에 대해 소득, 인하 금액과 관계없이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소득세·법인세에서 감면해준다. 추경을 편성해 추가 투입하는 게 아니라 내년 세수를 줄이는 식으로 지원한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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