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성향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최대 분수령인 3일(현지시간) ‘슈퍼 화요일’에 예상 밖의 역전 드라마를 썼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독주를 막기 위한 ‘반(反)샌더스 연대’의 위력이 컸다.
바이든은 이날 경선이 열린 14개 주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대의원이 걸린 텍사스를 비롯해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아칸소, 매사추세츠, 미네소타, 오클라호마, 테네시 등 10개 주에서 승리했다.
이 중 텍사스와 매사추세츠, 미네소타, 메인은 경선 전 여론조사에서 샌더스가 1위를 달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개표 결과 바이든이 판세를 뒤집었다.
바이든은 여론조사에서 승리가 예상됐던 주에서도 대부분 여론조사 때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버지니아가 대표적이다. 바이든은 여론조사에서 30%에 조금 못 미치는 1위를 할 때가 많았지만 이날 경선에선 53% 득표율로 압승했다. 앨라배마에선 지지율이 63%에 달했다. 다른 주에서도 바이든은 여론조사 때보다 대부분 지지율이 10~20%포인트가량 높았다.
샌더스의 독주를 막기 위한 ‘1차 중도 후보 단일화’의 위력 덕분으로 분석된다. 바이든과 함께 중도 성향 후보로 분류된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슈퍼 화요일 직전 경선을 포기하고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특히 텍사스에선 한때 ‘백인 오바마’로 불렸던 베토 오루어크 전 연방하원의원이 바이든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바이든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에 따라 그동안 다수의 중도후보로 분산됐던 민주당 중도 성향 유권자의 표심이 바이든에게 집중됐다. 또 다른 중도 성향의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이날부터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위력은 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 유권자들이 결국 바이든이 가장 안전한 베팅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11월 3일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인데, 결국 바이든을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좌파 샌더스가 대선후보로 나서면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구도가 형성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바이든은 2월에 열린 4개 주 경선 중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에서 패하면서 추락 직전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열린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흑인 유권자의 몰표를 바탕으로 압승을 거둔 데 이어 부티지지와 클로버샤의 지지를 끌어내면서 슈퍼 화요일 역전승에 성공, 향후 경선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됐다.
반면 샌더스는 이날 캘리포니아와 버몬트, 콜로라도, 유타 등 4개 주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민주당 대의원이 가장 많이 걸린 캘리포니아주에서 승리한 게 위안이지만 텍사스를 바이든에게 내준 건 뼈아픈 대목이다.
샌더스는 아이오와에서 부티지지와 사실상 무승부를 기록한 데 이어 뉴햄프셔와 네바다에서 승리하며 급격한 상승세를 탔다. ‘샌더스 대세론’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패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인 데 이어 슈퍼 화요일에 이기지 못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도전했다가 패한 아픈 경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샌더스의 약점은 본선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민 의료보험 의무화, 부유세 도입, 학자금 탕감, 전면 무상교육 등 급진적 공약을 내걸면서 청년층에선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지만, 중도층과 중장년층 이상에선 샌더스를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도 본선에서 샌더스와 맞붙는 걸 기대할 정도다.
샌더스와 같은 진보 성향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행보도 주목된다. 슈퍼 화요일 성적이 신통치 않은 워런이 경선을 포기하고 샌더스 지지를 선언하면 샌더스를 중심으로 한 ‘진보 연대’가 구축될 수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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