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이 청와대 비난 담화를 낸 지 하루 만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 친서’를 보냈다. 자신의 ‘분신’인 김여정을 통해 쓴소리를 한 후 본인이 직접 유화의 손길을 내미는 ‘냉온탕 전략’을 구사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함께 북한 내부 경제 사정이 상당히 악화된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지부진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기 위한 김정은의 조급함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청와대는 5일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친서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김정은이 친서를 우리 측에 전달했고, 문 대통령이 하루 뒤 답장을 보냈다. 친서는 4일 오후 늦게 청와대가 아니라 국정원 등의 외부 채널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이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친서를 교환한 것은 하노이 회담을 앞둔 2018년 12월 이후 15개월 만이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김여정이 청와대를 향해 ‘저능하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입장이 돌변한 셈이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한국이)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며 “남녘 동포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기를 빌겠다”는 내용도 친서에 담았다. 윤 수석은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고 부연했다.
청와대는 김정은의 친서 의미에 대해 공식적인 해석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우리 정부와 대화를 시도한 것은 북한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좋지 않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해외 공관을 중심으로 진단 키트를 공수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 친서는 문 대통령이 직접 밝힌 남북 보건 의료 협력 제안에 호응하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으로도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제101주년 3·1절 기념식 기념사에서 “북한은 물론 인접한 중국과 일본, 가까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비전통적 안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며 “북한과도 보건 분야 공동협력을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친서 교환을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재가동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이 친서에 김정은의 한반도 현안에 대한 ‘진솔한’ 입장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구체적인 보건·의료 교류나 실질적인 남북 대화 재개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기 전까지 직접적인 교류는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 외에도 당장 총선을 눈앞에 둔 만큼 비핵화 담판이 이뤄지기 어려운 정치적 여건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재원/이미아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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