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소재와 섬뜩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이어진다.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도 거듭된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달 첫 방영된 tvN 월화드라마 ‘방법’ 이야기다. 이 작품은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고 스크린에서나 다뤄졌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악귀, 무당, 굿 등 한국의 토속신앙을 오컬트 스릴러로 풀어냈다.
영화같은 드라마가 탄생한 것엔 남다른 비결이 있다.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직접 쓴 첫 드라마 극본이다. 연출도 영화 ‘챔피언’의 김용완 감독이 맡았다. 12부작에 달하는 드라마 형식에 영화적 문법을 접목한 것이다. 연 감독이 “시청률 3%만 넘으면 시즌 2를 제작하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낯선 소재를 들고 나왔지만, 지난 3일에 방영된 8회 시청률은 5%를 돌파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무당 진경(조민수 분)이 사지가 뒤틀린 채 처참한 최후를 맞는 장면은 큰 화제가 됐다. 주요 포탈 사이트의 검색어 상위권엔 ‘방법 몇부작’ ‘조민수’ 등이 올랐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은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시청자와 영화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두 장르의 장점을 결합한 작품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을 보면 영화인지, 드라마인지 정확히 정의하긴 어렵다. 전체적인 형식과 분량은 드라마에 가깝다. 긴 호흡과 풍성한 캐릭터 전개도 드라마 그대로다. 그런데 스크린에서나 볼 수 있던 연출 기법이 활용되고 화려한 화면이 구현된다. 두 장르의 제작진이 만나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시너지가 극대화된 것이다. 영화처럼 콘티(인물 표정과 동작, 카메라 움직임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를 적극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콘티는 배우들이 섬세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감독이 연출 포인트를 잡을 수 있게 돕는다. 그동안 드라마 제작 현장에선 콘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시청자 입장에선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을 방송 플랫폼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됐다. 2~3시간이란 짧은 시간에 다 담겨져 있던 스토리가 보다 길고 풍성하게 다뤄져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시도는 CJ ENM의 영화 전문 채널 OCN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드라마틱 시네마’란 타이틀을 내걸어 채널의 한 브랜드로 내걸었다. 그 시도는 지난해 2~3월 방영된 OCN의 ‘트랩’에서 처음 이뤄졌다. 당시 이 작품은 영화 ‘백야행’의 박신우 감독이 맡고, 극본은 드라마 ‘별순검’ 등을 집필한 남상욱 작가가 썼다. 이어 지난해 8~10월엔 두번째 드라마틱 시네마로 ‘타인은 지옥이다’를 선보였다. 이 작품 역시 연출은 영화 ‘사라진 밤’을 만든 이창희 감독이 맡았다. 극본은 드라마 ‘구해줘’를 쓴 정이도 작가가 집필했다. 오는 5월에도 세번째 드라마틱 시네마가 방영된다. 차태현, 이선빈, 정상훈 등이 출연하는 ‘번외수사’다. 영화 ‘내안의 그놈’을 만든 강효진 감독이 연출을, 드라마 ‘실종느와르 M’을 집필한 이유진 작가와 신예 정윤선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다른 채널에서도 이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8~9월 JTBC에서 방영된 ‘멜로가 체질’은 1000만 관객을 모았던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만들었다. 당시 20~30대 여성들로부터 많은 화제가 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 ‘킹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 선보인 시즌 1은 큰 인기를 얻었다. 작년 한 해동안 넷플릭스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본 드라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조선 좀비물’이란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이 작품은 드라마 ‘시그널’을 쓴 김은희 작가가 집필했다. 이 작품에서도 영화 감독들이 연출을 맡았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시즌 1에 이어 오는 13일 공개되는 시즌 2 초반까지 만들고, ‘특별시민’의 박인제 감독이 나머지 분량을 책임진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도 대중들은 갈증을 느낀다.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목마름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결합은 그 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형식을 바꾸고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롭게 다가갈 수 있다. 결국 ‘익숙한 새로움’을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참신한 스토리텔링 기법이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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