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베트남이 쌓은 '공든 우정', 누가 흔드나

입력 2020-03-09 18:33   수정 2020-03-10 00:11

하노이가 발칵 뒤집혔다. 통제했다고 믿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베트남의 수도를 뚫고 말았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보름간 여행한 뒤 하노이 노이바이국제공항을 통해 지난 2일 입국한 26세의 베트남 여성이 6일 확진판정을 받았다. 23일 만의 재발이다. 베트남 재벌가의 딸로 알려진 이 여성(17번째 확진자)의 운전기사, 고모를 비롯해 같은 항공기를 탔던 이들도 잇따라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 중엔 전 베트남사회과학아카데미 원장도 포함됐다. 9일 오전까지 정부가 공식 발표한 추가 확진자만 14명이다.

6일 이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승리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코로나19와의 전투에서 베트남은 모범국으로 칭송받았다. 확진판정을 받았던 16명은 모두 완치돼 퇴원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하고, 최대 투자국인 한국에 대해서도 사실상 입국을 금지하는 등 외교적,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얻어낸 성과였다.

베트남의 강경한 조치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방역능력이 부족한 나라의 투박한 조치”라고 했지만 이것만으론 설명하기 어렵다. 베트남이 직면한 어려움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가져올 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게 핵심이다.

베트남 정부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65%로 제한돼 있다. 2015년에 국회가 결의한 사안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 수치는 63%에 달했다. 은행들도 정부를 대신해 유동성을 공급할 처지가 못 된다. 10여 년 전 발생한 부실채권들을 정리하느라 제 코가 석 자다.

‘코로나19 청정국’으로 평가받던 베트남이 삽시간에 전염병 대유행 공포에 사로잡힌 건 이번 사태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방어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베트남 정부는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번에도 강력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하노이 봉쇄’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베트남 경제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인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다. 베트남 수출액의 68.8%(지난해 말 기준)를 차지하는 FDI 기업은 대부분 대도시 근교에 있다.

베트남의 건강보험 가입률은 90% 이상이다. 코뮌이라 불리는 농촌 사회 구석까지 보건소가 마련돼 있고, 농민들은 ‘3호 담당제’로 단단히 묶여 있다. 검사 능력도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박기동 세계보건기구(WHO) 베트남 사무소장은 “얼마 전 비엣A코퍼레이션이라는 베트남 회사가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자체 개발해 6개월 임시 사용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베트남 내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제로(0)’다.

베트남이 코로나19 퇴치에 성공한다면 다시 한번 도약의 기회를 잡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글로벌 기업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에 쏠린 공급망을 베트남 등지로 분산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의심하고 이간질하는 이도 있다. 남의 불행을 낙(樂)으로 삼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한국과 베트남의 굳건한 우정을 보여줄 기회다. 그들을 압도할 온정이 양국에 퍼지길 희망한다.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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