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경찰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관세청 등 정부 기관들이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각종 단속 활동에서 활발하게 사용하며 법무법인(로펌)을 찾는 기업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로펌들로부터 업무용 컴퓨터와 임직원 스마트폰, 이동저장장치(USB) 등을 점검받고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사전에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디지털 포렌식팀을 ENI팀(eDiscovery & Investigation)으로 확대 개편했다. 조직 규모를 20여 명 늘려 50여 명까지 키웠고 최첨단 장비도 마련했다.
ENI팀이 진행하는 내부 조사 유형은 다양하다. 직원 부정 행위나 퇴직자의 영업비밀 유출 과정을 찾아내기도 하고 내부 고발, 사내 성희롱 문제까지도 손을 댄다. ENI팀 소속 정수봉 변호사는 “내부 조사는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전자 증거를 확보한 뒤 해당 임직원 면담 조사를 통해 비위 행위를 특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말이 내부 조사지 정부 기관의 수사나 조사를 민간에서 받는 식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NI팀에 검찰 출신 변호사가 다수 포진한 배경이다. 이들 변호사는 수사기관들이 기업 압수수색을 집행할 때 현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업무도 담당한다.
ENI팀은 영미권 소송에서 흔히 적용되는 디스커버리 대응에도 방점을 찍고 있다. 디스커버리란 재판에 앞서 원고와 피고가 각자 자신이 보유한 증거를 내놓는 제도다. 유럽 경쟁당국이나 미국 증권협회 등 해외 규제기관에서 한국 기업을 조사할 때도 디스커버리에 준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ENI팀은 디스커버리가 한국 기업에 생소한 제도인 데다 공개 대상 대부분이 이메일 등 전자문서여서 국내 기업들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팀을 ENI팀로 바꾸면서 첫 글자를 ‘E’라고 적은 것도 전자정보와 관련한 디스커버리 해법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ENI팀을 이끌고 있는 김광준 변호사는 “전자정보 디스커버리를 위해서는 한꺼번에 많은 전문가가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리뷰 플랫폼이 중요하다”며 “태평양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렐라티비티(Relativity)’를 클라우드 방식으로 국내 처음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은 한국 유통업체의 미국 내 입찰 부정 관련 소송과 국내 펀드의 미국 뉴욕주 호텔 투자 관련 소송 등에서 전자정보 디스커버리 대응 업무를 수행했다.
태평양 관계자는 “디지털 포렌식은 기업인들에 대한 형사소송을 비롯해 공정거래와 노동, 산업안전, 조세 등 기업 자문 관련 모든 팀과 협력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며 “ENI팀이 태평양의 간판급 조직이 될 수 있도록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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