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뢰자본 쌓아 성장 속도 올려야

입력 2020-03-10 18:11   수정 2020-03-11 00:18

“이마에서 땀이 흘러 고글 안으로 타고 내려요. 방호복 안 근무복은 땀에 젖어 당장 벗어던지고 싶지만, 책임감과 사명으로 버티네요.”

얼굴에 마스크와 고글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한 간호사의 얘기를 듣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자기 병원 문은 닫아걸고 대구·경북으로 향하는 의료진, 확진자 발생 지역의 방어망 구축을 위해 밤낮없이 애쓰는 공무원들까지…. 대부분의 행사와 모임은 취소되고, 혼자 TV만 쳐다보고 있기가 미안한 지금이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빛나고 있다. 개인, 단체, 기업 할 것 없이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 방역물품을 기부하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나누자며 임대료를 전격 인하하겠다는 건물주, 화훼 농가를 살리자며 꽃 선물하기 릴레이를 펼치는 지역주민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강한 ‘해피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

‘마더 테레사 효과’라는 것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은 봉사와 사랑으로 일생을 살았던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을 보여준 그룹에서 특정 면역항체가 50%나 높아졌다는 결과를 내놨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행동이 ‘선한 영향력’을 형성해 시민들의 마음은 물론이고 체내에서도 강력한 백신을 생성해 냈다는 것이다.

경제에도 ‘신(信)’ 성장동력이 있다. 성장은 자본, 노동과 같은 경제적 자본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도 있다. 의지할 사람이 많아지면 신뢰가 쌓이고, 신뢰를 확충하면 경제활동에 새로운 기회가 창출된다는 게 행동 경제학자들의 이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 신뢰도는 27%로, 조사 대상 34개국 중 33위를 차지해 최하위권이다. ‘의지할 사람이 많은지?’를 가늠하는 사회 네트워크 수준도 35개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여기서 한국의 사회 신뢰도가 10%포인트만 상승하면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4%포인트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신뢰도가 OECD 최상위권 수준까지 올라간다면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부와 국회는 기업, 국민, 근로자들에게 늘 일관성 있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최적의 선택을 통해 수립한 정책을 시간이 흘러 여러 정치적, 경제적 이유가 생겼다며 방향을 변경한다면 민간의 신뢰만 잃게 된다. ‘동태적 일관성’을 주장한 200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핀 키들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콧의 말이다.

정부 성향에 따라, 여야 입장에 따라, 재판부 성향에 따라 규제를 강화하고 또 완화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규제 일변도 정책’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예컨대 ‘타다’라는 모빌리티 사업을 놓고 법원은 “된다”고 하고, 국회는 “안 된다”고 한다면 벤처 투자자들은 어떤 신호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규제 환경의 한국에서 과연 우버나 리프트 같은 모빌리티 사업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

기업도 정부와 국회는 물론 근로자에게도 신뢰의 자본을 탄탄히 쌓아가야 한다. 노조 또한 내 몫 챙기기에만 몰두할게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기업이 법보다 좁은 울타리를 만들어 자율규범을 강화하면 정부 규제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규제가 감소하면 기업가 정신이 고취되면서 투자가 늘고, 이는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실제로 공유주방 업체들이 “높은 수준의 위생 기준을 자율적으로 수립하겠다”고 약속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관련 규제를 풀었고, 공유주방 업체는 2년간 30여 개가 늘었다. 공유주방 기업에 대한 믿음의 약속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어려운 시기다. 연말연시만 해도 한국 경제가 올해 2% 초중반의 성장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 국내외 연구기관이 많았다. 지금은 ‘코로나 쇼크’로 1%대의 경제 성장을 전망하는 글로벌 투자은행이 늘고 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쌓아 경제 성장의 속도를 올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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