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직전 180개 원전 부품업체 문 대통령에 읍소했지만…두달 만에 산업부 원전과장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불가"

입력 2020-03-10 17:52   수정 2020-03-11 08:59

원자력발전소 부품협력사 180곳이 연대 서명 방식으로 청와대에 건의문을 전달한 것은 올해 초. 연쇄 부도 위기에 몰린 만큼 신한울 3, 4호기만이라도 건설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두 달여 만에 답신을 받은 중소 부품업체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가 아니라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과장 전결로 처리된 ‘민원 결과 안내’엔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 불가”란 입장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업종 전환할 시간 달라는 건데…”

‘원자력산업 운영기업 일동’이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 건의문’을 보낸 건 원전 관련 일감이 갑자기 뚝 끊겨서다. 정부가 2017년 탈원전 정책을 국정 추진 과제로 공식 선언한 데 따른 여파다.

원전업체들은 총 다섯 장짜리 건의문에서 “(정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발맞춰) 업종을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최소 5~10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해 적응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또 “세계 최고의 기술 수출 및 인재의 해외 진출을 위해 최신형인 신한울 원전을 짓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연대 서명에 동참한 전국 180개 업체 및 대표자 이름, 주소 등을 별도로 첨부했다. 신한울 3, 4호기는 각각 1.4GW 전력을 생산하는 가압형 원자로 2기로 구성된 원전이다. 총사업비만 8조2600억원 규모다.

원전업체 건의문에 대한 산업부 답변 자료는 종전 입장을 그대로 반복한 수준이었다. ‘민원 처리 결과’ 답신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를 포함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신한울 3, 4호기 건설 취소는 정부가 이미 결정한 정책 방향”이라고 했다. 또 “추가 설명이 필요하면 산업부 담당 주무관에게 연락하라”고 부연했다.

답변을 받은 중소 원전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상실감을 토로했다. A사 대표는 “일감이 없어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상황인데 이런 성의 없는 답을 들으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청와대에 공식 건의문을 보냈는데 산업부 담당 주무관에게 물어보라는 식의 답변이 왔다”며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작년 신규 납품계약 46% 급감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해온 국내 원전 생태계는 붕괴 직전이다. 작년 원전 주 기기 생산업체인 두산중공업의 협력업체들이 신규로 계약한 건수는 총 1105건에 불과했다. 전년(2051건) 대비 46.1% 감소했다. 협력업체는 1000여 곳에 달한다.

올해 말 신고리 5, 6호기 납품이 마무리되면 내년엔 아예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게 다수 원전업체의 얘기다. 신고리 5, 6호기는 2023~2024년 완공 예정인데 기자재 납품이 사실상 올해 안에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인 두산중공업도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다. 2016년 8조원을 웃돌던 신규 수주액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2조1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달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배경이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 역대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장관 등 원로 13명은 작년 말 청와대에 ‘탈원전 정책 철회 건의문’을 보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역시 작년 1월 총 33만 명의 국민 서명을 첨부해 비슷한 내용의 건의문을 전달했지만 청와대는 답하지 않았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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