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들이 참석한 거시경제금융회의. 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의 공개발언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포함됐다. “공포심이나 불안 심리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 뒤따르긴 했지만, 지난해 6월 일본의 수출규제나 8월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을 때 “경제의 기초 체력은 괜찮다”며 위기를 거론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엔 한국 경제가 지난 10년간 경험하지 못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정부 인식이 반영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악화될 수 있다는 정부의 판단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①당시보다 외환보유액 등 금융지표가 양호하지만 일부 단기 지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②수출 투자 등 실물경제 부진이 당시보다 훨씬 심각하며 ③그때보다 세 배로 늘어난 가계부채(1504조원)가 새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외환보유액, 신용부도스와프(CDS), 단기외채 비중이다.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4092억달러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외환보유액(2012억달러)과 비교하면 두 배 수준이다. CDS 프리미엄도 이날 기준 50bp(1bp=0.01%포인트)로 2008년 12월 말(318.7bp)보다 크게 낮다. CDS 프리미엄이 낮다는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한국 국채의 부도 가능성을 그만큼 낮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총외채에서 1년 미만 단기외채 비중도 지난해 말 기준 28.8%로 2008년(47.1%)에 비해 낮은 편이다. 다만 “국제 금융시장 변동에 따라 한국 단기 금융시장도 급격히 흔들리고 있어 안심할 수는 없다”(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의견도 있다. CDS 프리미엄은 이달 초 30bp에서 10일 50bp로 70% 가까이 급등했다. 환율은 올 들어 달러당 1200원을 오가며 급격히 출렁이고 있고, 외국인 투자자는 전날인 9일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3125억원어치를 순매도해 일간 기준 역대 최대 순매도를 기록하며 불안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실물경제의 기초체력이 2008년에 비해 훨씬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2008년 경제성장률은 3.0%였다. 지난해 성장률은 2.0%였고, 올해는 더 낮아질 전망이다. 최근 코로나19의 경제충격이 본격화되자 무디스(1.4%) 스탠더드앤드푸어스(1.1%) 등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대들보인 수출은 지난해 10.3% 감소하면서 10년 만에 두 자릿수로 추락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수출이 13.6% 증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설비투자 등을 아우르는 ‘총고정자본형성’은 전년 대비 3.3% 줄어 글로벌금융위기(-0.6%) 때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20.5%) 이후 최악이다. 전(全) 산업생산(2.2%→0.4%)도 2008년보다 증가율이 낮았다. 소매판매 증가율은 2.4%로 2008년(1.1%)보다 높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수요 위축을 감안하면 올해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침체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현저히 둔화되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가 지나가더라도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나 2015년 메르스 때처럼 경기가 ‘V자 반등’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