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우려로 위생용품과 식품 등을 사재기하는 이른바 ‘패닉 사재기’가 확산되고 있다. 런던 도심 곳곳의 유통업체 매장마다 손소독제를 비롯한 위생용품과 즉석식품, 파스타면, 반려동물 식량 등의 사재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 중에서 런던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제품은 단연 손소독제다. 손세정제(hand soap)와는 달리 젤 또는 액체형태로, 물 없이 사용하는 제품이다. 대형 유통매장뿐 아니라 영국의 헬스·뷰티전문업체인 부츠와 각종 소매매장에서도 손소독제는 진열되는 즉시 팔려나가고 있다. 국내에서 빚어지고 있는 ‘마스크 대란’과 닮은 꼴이다. 일간 가디언은 리서치전문업체의 통계를 인용해 지난달 한 달 동안 손소독제 판매량이 전월 대비 255% 늘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말부터 유럽에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달 판매량은 훨씬 불어날 전망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인근이나 관광지 주변 매장에선 손소독제는 오전에 진열되자마자 팔려나가고 있다. 출근길에 손소독제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선 광경도 볼 수 있다. 금융회사가 밀집한 시티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자가 이날 낮부터 워털루역을 비롯해 빅토리아역, 웨스트민스터역, 트라팔가광장, 옥스퍼드서커스, 피카딜리서커스 인근 매장을 돌아다녔지만 손소독제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마스크는 어떨까. 국내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마스크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아마존과 이베이 등 미국과 유럽에서 운영 중인 일부 온라인 유통사이트에선 마스크가 품절되거나 가격이 치솟고 있다. 그럼에도 영국에선 아직까지는 ‘마스크 대란’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런던 시내에서 마스크를 쓴 현지인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있어도 열에 아홉은 동양인이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스크는 의료진 및 환자들에게 필요할 뿐 일반 시민들은 착용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보건당국도 정상인이 호흡기 관련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마스크가 어느 정도 기능을 하는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게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손 씻기를 가장 강조하고 있다. 영국에선 마스크가 아니라 ‘손소독제 대란’이 발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체들은 손소독제 사재기를 막기 위해 뒤늦게 지난 주말부터 인당 구매제한 방침을 실시하고 있다. 테스코는 손소독제 판매 수량을 인당 5개로 제한했다. 부츠는 인당 두 개까지만 손소독제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재기에 따른 폭발적인 수요 중가는 가격 폭등을 불러오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선 평소 49펜스(약 800원)에 팔리던 손소독제 가격이 24.99파운드(3만 9000원)까지 치솟았다. 손소독제를 평소보다 열 배 이상 인상한 일부 오프라인 매장도 있다. 이렇다보니 알코올 함유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보드카를 활용해 손소독제를 제조하는 방법도 온라인상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유통업체 대표들과의 협의를 통해 손소독제를 비롯한 위생물품 공급부족 현상이 빚어지지 않도록 준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별도로 영국 보건당국은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누와 물을 활용해 20초간 손을 씻는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비누와 물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에 손소독제를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손소독제만으로는 코로나19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 보건당국의 설명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비누와 물을 이용해 손을 씻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손소독제와 달리 액체비누 등은 아직까지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보건당국은 “손소독제의 알코올 함량은 최소한 60%가 넘어야 하는데다 각종 살균물질이 들어간다”며 “집에서 보드카를 활용해 손소독제를 만드는 건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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