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길의 경제산책] 불붙는 '10년 위기설'…"이번엔 진짜다"

입력 2020-03-11 10:12   수정 2020-03-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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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산가들 사이에서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이 집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건 작년 여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큰 위기’가 닥칠 것이란 예상에 시중에선 금과 달러 사모으기가 유행했지요. 금값이 계속 오른 배경 중 하나입니다. 개인들의 달러 예금도 급증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관측이 주된 근거였습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실패에 따른 경기 추락과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등이었지요. 우리 경제의 버팀목으로 꼽혀온 수출도 감소세로 전환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겪은 데 이어 다시 큰 경제 위기를 겪을 시점이 도래했다는 막연한 추측도 한 몫 했습니다. 이른바 “10년마다 큰 위기가 온다”는 10년 주기설이죠.

다만 작년까지는 현실화 가능성이 낮았던 게 사실입니다. 큰 주목을 끌지 못하던 경제위기 10년 주기설은 이번 코로나19 발병과 함께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위기는 이렇게 예고 없이 옵니다.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는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찾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4092억달러(세계 9위)에 달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질 당시엔 39억달러밖에 없었지요. 이를 눈치 챈 해외 금융회사들이 너도 나도 ‘대출 상환’을 요구하면서 일종의 지급 불능 사태로 치달았습니다. 급속 성장 과정에서 누적됐던 기업들의 방만 경영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주목할 점은 당시에도 기업 실적이 빠르게 악화했고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됐다는 겁니다.

금융위기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집중적으로 취급하던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됐습니다. 수 년간의 저금리에 따른 시중 유동성 급증이 은행권 대출 경쟁으로 이어졌고 ‘위험 분담’에 골몰하던 월가에선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신종 파생상품을 쏟아냈습니다.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자 주택시장이 급속히 붕괴됐고 파생상품은 휴짓조각이 됐던 게 비극의 단초입니다. 1929년의 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세계적 수준의 대혼란이 초래됐지요.

견조하던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2008년 3.0%, 2009년 0.8%로 뚝 떨어졌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출 비중 때문에 글로벌 위기는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지요. 우리 성장률은 최근에도 지속적으로 둔화돼 작년엔 2.0%에 그쳤고, 올해는 낙관적으로 봐도 1%대에 그칠 것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주목 받고 있는 ‘10년 주기설’은 최근의 글로벌 증시 폭락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등 산유국들의 ‘석유 정치’가 유가 하락에 불을 당겼습니다. 실물과 금융 위기가 동시에 닥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이 안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등이 경제 호황을 구가하며 체력을 비축하는 동안 우리 경제는 뒷걸음질 쳤기 때문이죠. 코로나19는 그로기 상태였던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습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지수는 지난 3년 간 하락했는데, 역사상 3년 연속 떨어진 건 1998년 외환위기 직전 시기 뿐”이라며 “미래 수요 활동이 악화할 경우 통제 불가능한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는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입니다. 이들이 빚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면 본격적인 금융 부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금융위기 때 ‘경제 소방수’ 역할을 했던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지금은 산업과 금융 충격이 한꺼번에 닥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코로나발(發) 경제위기가 얼마나 지속할 지 가늠하긴 어렵습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진입했을 뿐입니다. 다만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외환·금융위기 역시 결국은 이겨내고 재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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