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을 올린 가운데 첫 감사 선임 불발 사례가 나왔다.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지배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맞물려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연출된 ‘무더기 감사 선임 불발 사태’가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쳐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과용 의약품 개발 전문 업체 디에이치피코리아는 11일 충북 청주에 있는 본사 회의실에서 주총을 열었지만 감사 선임에 실패했다.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올해 정기 주총에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안건이 부결된 첫 사례다.
디에이치피코리아의 최대주주는 삼천당제약이다. 지난해 말 기준 지분 38.4%를 보유하고 있다. 소액주주 지분율이 54.6%에 달한다. 감사 선임을 위해선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와 발행 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감사 선임은 3%룰이 적용돼 최대주주 지분이 아무리 많더라도 의결권은 3%까지만 인정해준다.
안건 처리를 위해선 소액주주의 주총 참석이 필요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까지 겹쳐 참석률이 ‘제로(0)’에 가까웠다. 디에이치피코리아 관계자는 “감사 선임 안건 통과를 위해 전자투표를 독려하고 의결권 대리 권유 공시까지 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업계에선 디에이치피코리아를 시작으로 올해 정기 주총에서 감사 선임 불발 사례가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2017년 12월 섀도보팅(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가 폐지된 뒤 매년 감사 선임 불발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섀도보팅은 의결 정족수를 충족하기 위해 주주가 주총에 참석하지 않아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주주의 찬반 비율대로 표를 나누는 제도다.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전자투표제가 도입됐지만 행사율은 저조하다. 한 코스닥 상장사 임원은 “의결권 위임 권유 대행업체를 이용해도 코로나19 탓인지 소액주주들을 만나기 쉽지 않아 위임장 회수율이 바닥”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기 주총에선 153곳의 상장사에서 무더기로 감사 선임이 불발됐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에 따르면 상장사들의 지분 구조를 감안했을 때 올해 238곳이 의결 정족수 미달로 감사·감사위원 선임 안건을 통과시키기 어려울 전망이다. 전체 상장사의 13%에 달한다.
기업들은 주총 의결 정족수 기준과 3%룰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3%룰은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는 가장 엄격한 주총 결의 요건”이라고 지적했다.
김은정/이우상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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