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에너지 전쟁 발발…우리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나

입력 2020-03-11 18:50   수정 2020-03-12 00: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 후 살얼음판을 걷던 글로벌 증시가 한순간에 무너진 건 국제 유가 탓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등 주요 산유국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기름값이 일순간 폭락했다. 석유가 여전히 정치 게임의 부산물이란 점을 입증했다.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데 석유는 필수불가결한 에너지다. 연료뿐만 아니라 의류 화학비료 화장품까지 쓰임새가 광범위하다. 지난 100여 년간 석유를 둘러싼 국제 분쟁이 유독 잦았던 배경이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이면에 석유가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7년 6월 탈핵(脫核)으로 대변되는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지 3년 가까이 흘렀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민 관심을 환기한 점은 성과로 꼽힌다. 배출가스 등 환경 오염원에 대한 국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원의 확대 가능성도 확인했다.

하지만 훨씬 많은 부분에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 초우량 공기업이 줄줄이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값싸고 안정적인 원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원전 이용률은 2016년만 해도 80~90%에 달했지만 탈원전 시행 후엔 70%선에 그치고 있다. 결국 올 하반기부터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에너지 안보다. 정부는 신규 원전 6기의 건설을 백지화했고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를 잇따라 폐쇄했다. 2030년까지 운영 허가를 종료하겠다는 원전만 11기에 달한다. 설계수명(30~40년)이 만료되는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다. 미국 등에선 안전 보강을 거쳐 60~80년 이상 가동하는 게 보통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우리 원전 기술을 포기하고 공급 안정성이 떨어지는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로 대체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해외 자원개발이 ‘올스톱’된 점도 에너지 안보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은 해외 우량 자산을 닥치는 대로 팔고 있다. 전 정권의 자원개발 실태에 대한 ‘적폐 수사’ 광풍에 이어 “해외 사업에선 아예 손을 떼라”는 윗선의 지시가 떨어진 뒤다. 페루 마르코나(구리 광구), 호주 물라벤(유연탄), 미국 로즈몬트(구리) 등이 줄줄이 매각됐고, 알짜로 꼽혀온 파나마의 ‘코브레 구리 광산’ 지분도 매물로 나왔다.

새로운 개발사업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석유공사가 해외 광구에서 직접 생산하는 석유는 2015년 하루 23만1000배럴이었으나 작년 말 19만2000배럴로 낮아졌다. 올해 북해 톨마운트 광구 지분까지 팔면 ‘한국산 석유’는 더 줄어들게 된다.

한국은 국제 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에너지 수급난을 겪어왔다. 유가가 배럴당 최고 150달러에 달했던 2008~2010년엔 해외에서 석유를 조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반면 자원확보 경쟁에 뛰어든 선진국들은 자금력을 갖춘 공기업을 앞세워 핵심 자원을 선점하고 있다.

정부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몰두하는 사이 구리 철광석 니켈 등 주요 광물 가격은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2017년 t당 평균 71달러였던 철광석 수입 가격은 지난주 90달러까지 치솟았다. 전기차 배터리에 주로 쓰이는 니켈 가격도 같은 기간 20% 넘게 상승했다. 한국은 전체 연료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 빈국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정부의 에너지 안보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국민이 많다.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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