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뒤늦게 팬데믹 선언한 WHO…"코로나19 더 확산될 것"

입력 2020-03-12 07:19   수정 2020-06-10 00:03

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했다. 코로나19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건 1968년 홍콩독감과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전 세계 110여개국에서 확진자 수가 12만명을 넘고 사망자가 4300여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WHO가 늑장대응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사진)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가 놀라운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고 심각성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팬데믹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발표했다.

WHO는 감염병 위험 수준에 따라 1~6단계의 경보 단계를 설정한다. 6단계가 전염병 위험 최고단계인 팬데믹(pandemic)이다. 그리스어로 ‘pan은 ‘모두’, ‘demic’은 ‘사람’이란 뜻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단계다. WHO의 팬데믹 선언은 2009년 1만4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신종인플루엔자(H1N1) 이후 11년만에 처음이다.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건 1968년 홍콩 독감과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최근 2주새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13배 늘어났고 현재 114개국에 11만8000여건이 접수돼 4291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앞으로 며칠, 몇 주 동안 확진자와 사망자 및 피해국의 수는 훨씬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코로나19를 여전히 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등 일부 국가를 모범사례로 꼽았다. 그는 “11만8000여 건의 확진 사례 중 90% 이상은 4개국에서 발생했다”며 “중국과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공격적인 조처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코로나19에 대해 한국과 이란, 이탈리아가 취한 조치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WHO가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포했다고 할지라도 당장 각국에 대한 WHO의 권고사항 등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WHO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팬데믹은 용어적인(colloquial) 의미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코로나19의 발병 위협이 최고조에 달해 각국 정부가 더 강력한 대응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의미라는 것이 WHO의 설명이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현 상황을 팬데믹이라고 묘사한 것은 코로나19가 제기한 위협에 대한 WHO의 평가를 바꾸지 않는다”며 “WHO가 하는 일과 각국이 해야 하는 일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HO의 국제보건 규정은 국제법상 조약으로 190여개 회원국에 국내법(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다만 처벌·강제 규정이 없어 현실적으로는 권고 수준의 효과에 불과하다.

그러나 WHO의 팬데믹 선언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지적이 전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WHO가 팬데믹 선언을 주저하는 사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됐기 때문이다. WHO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중국에서 첫 코로나19 발병이 보고된 이후 70여일새 확진자 수는 전 세계적 110여국에서 12만명을 넘었다. 사망자도 4300명을 넘었다.

WHO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로 74개국에서 3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팬데믹을 선포한 것과 비교해 지나치게 늦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WHO는 지난 1월30일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제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WHO는 지금까지 줄곧 “아직까지 팬데믹 상황에 이르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영국 공영 BBC는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로 확산되자 WHO가 더 이상 팬데믹 선포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팬데믹 선언을 늦췄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팬데믹은 가볍게 혹은 무심코 쓰는 단어가 아니다”라며 “그것은 잘못 사용하면 비이성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코로나19과의) 싸움이 끝났다는 정당하지 못한 인정을 통해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이어 “모든 국가는 보건, 경제·사회 혼란 최소화, 인권 존중 가운데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며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적·경제적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많은 파트너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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