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렇게 답했나" 금융사에 전화해 추궁…이것이 '금감원 클라쓰'

입력 2020-03-12 18:00   수정 2020-03-1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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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를 끝까지 색출해내겠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확실히 비밀 보장 되는 것 맞죠?”

지난 11일 저녁 한 금융회사 관계자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왔다. 한국경제신문의 <슈퍼갑 금융감독원 대해부> 시리즈가 인터넷으로 보도된 직후였다. 기사에는 한경이 78개 금융회사와 협회를 대상으로 벌인 ‘금감원 평가’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이 가운데 27개 회사는 ‘겁이 난다’며 아예 답변을 거부했다. 금감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기사가 나온 뒤 금감원이 대대적으로 ‘검거’에 나선 이유다.

금융사 곳곳에선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응답자는 “설문 문항마다 어떻게 응답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타사 동향까지 물어봤다”며 “답변을 내지 않았다거나 긍정적인 답변만 했다고 둘러댄 곳도 많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익명성을 믿고 솔직하게 응답한 것이니 끝까지 비밀을 지켜달라”고 입을 모았다.

금감원이 무리한 ‘색출 작업’에 나선 것은 이번 조사로 감독기구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경은 객관적인 결과를 위해 100% 익명으로 응답을 받고 회사명도 밝히지 않았다. 설문 결과 응답자의 80.3%가 ‘금감원 관련 업무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어려웠던 경험(복수응답)으로는 △행정편의주의적 규정 해석(63.9%) △무리한 자료 제출 요구(60.7%) △업계 주장·해명을 듣지 않음(55.7%) 등이 꼽혔다. 항목별로는 현장감각(65.8%), 소통능력(65.3%), 일관성(61.8%) 등에서 부정적 응답(부족+매우 부족)이 압도적이었다. 주관식 문항에선 업계에 군림하는 금감원의 고압적 태도에 대한 성토가 줄을 이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다들 생각은 해왔지만 속시원히 말할 수 없던 부분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 같다”며 “금감원이 그동안의 감독 관행에 대해 자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감원 반응은 예상과 동떨어졌다. 보도 이후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던 금감원은 12일 ‘금융감독원 검사에 대한 2019년 외부 설문조사 결과’라는 제목의 참고자료를 냈다. 지난해 10월 금감원이 외부 조사기관에 위탁해 검사 품질에 관해 자체 설문을 벌인 내용이었다. 금감원은 “종합점수가 10점 만점에 8.08점으로 두 번째 긍정적 응답(상당히 그렇다)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영역별로는 금융회사의 권익보호(8.30점), 전문성·업무자세(8.23점), 검사절차의 투명성(8.04점) 등에서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검사 관련 외부 설문조사를 지속하는 한편 더욱 신뢰받는 감독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특별히 반성할 게 없으니 지금처럼 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직접 발주한 설문조사에 객관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금융사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이 결과만 보고 스스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금감원이 불신을 자초한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융통성 없는 태도라는 게 금융권 얘기다. 외부의 변화나 다른 목소리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권위적인 태도로 일하다 보니 시대와 산업의 흐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지난해 금융 사고가 잇달아 터진 것도 결국 금감원이 때마다 적절한 역할을 못 했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발생한 해외금리 DLF(파생결합펀드) 손실 사태, 라임 펀드 사태 등을 놓고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제재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금감원은 이날 설명 자료에서 ‘열린 문화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탈권위주의·소통·역지사지’를 기치로 지난달 시작한 열린 문화 조성 캠페인이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들자마자 ‘발본색원하겠다’는 태도가 여기에 부합할지는 의문이다.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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