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개막한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 등 해외 연기금이 삼성SDI, 효성중공업, SK하이닉스 등 국내 63개 기업의 188개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 일각에선 국내 사정에 밝지 않은 해외 연기금들이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판단 잣대로 반대 의결권을 대거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해외 연기금 여섯 곳이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투자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밝혔다. 캘퍼스를 비롯해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 플로리다연금,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온타리오교직원연금,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이다.
이들 해외 연기금이 반대표 행사를 결정한 대상은 삼성SDI, 효성중공업, SK하이닉스, 하이트진로홀딩스, 빙그레, 롯데정밀화학 등 63곳이 상정한 안건 중 188개 건이다.
반대 안건 내용을 보면 사내이사 선임이 38.1%로 상대적으로 높다. 이어 감사 보수 한도 승인(25%), 사외이사 선임(23.7%), 감사위원 선임(22.7%), 정관 변경(14.3%)순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연금을 운용하는 플로리다연금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전체 반대 안건(188건)의 절반이 넘는 103건(54.7%)이 플로리다연금에서 나왔다. 플로리다연금은 각 기업의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을 집중적으로 반대했다. 한미반도체, 대한제강, 한국단자공업, 하이트진로홀딩스, 롯데정밀화학, 더블유게임즈 등의 이사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 “경영 성과 등에 비해 과다하게 책정됐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다.
해외 연기금들은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겸직을 반대표 행사의 주된 근거로 꼽았다. 의결권 자문사 관계자는 “해외 연기금은 여러 사내이사직을 수행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외 연기금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해외 연기금들이 갖고 있는 지분이 많진 않지만 국내 주주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선 해외 연기금이 국내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잣대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재무제표 승인 안건이다. 해외 연기금은 상당수 기업의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총 소집 공고 때 제시된 재무제표가 외부감사인의 감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내 규정상 주총 소집 공고 기한(주총 2주 전)이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주총 1주 전)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해외 연기금들은 이처럼 불가피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매년 반복적으로 재무제표 승인 안건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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