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는 작년 하반기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격, 중동지역 긴장 고조 등의 영향으로 급등했습니다. 올 초부터 약세로 돌아섰지요.
하지만 국제유가 시장의 가장 큰 ‘이벤트’가 국내 주유소엔 아직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가장 큰 사건은 지난 9일 발생했던 ‘주요 산유국 간 감산 불발’입니다. 큰손으로 꼽히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증산·가격인하 등 유가 전쟁에 나서면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등이 하루만에 30%가량 폭락했던 겁니다.
올해 1월 배럴당 60달러대였던 WTI 평균 가격은 현재 배럴당 30달러 정도로 반토막 났습니다. 배럴당 최저 26달러까지 떨어졌던 2016년 2월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당시엔 국제유가가 금세 회복세를 보였지요.
국제유가가 급락했다고 해서 국내 휘발유·경유값이 금방 내리지 않습니다. 정유사들이 저가로 수입한 석유를 정제하는 데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주유소 기름값은 국제유가와 실시간 연동하지 않고 국내 석유제품 가격과 연동하는 방식”이라며 “국내 주유소 기름값에 반영되기까지 2주일 정도 시차가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9일 급락했던 국제유가가 실제 주유소 기름값으로 반영되려면 다음주 초는 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소비자들이 직접 넣는 기름이 유가 하락폭만큼 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전체 기름값의 절반 이상을 세금이 차지하는데다, 주유소 임차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는 그대로이기 때문이죠. 석유 원가 비중을 전체 가격의 20% 정도로 추산할 경우 지난 9일 급락 이벤트에 따른 가격 인하 요인은 L당 100원 안팎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름에 붙는 세금의 종류는 참 많습니다. 수입 때 매기는 관세가 3% 정도이고, 석유수입 부과금(L당 16원)이 붙습니다. 별도로 교통에너지환경세가 L당 529원, 교육세가 79.35원(교통세의 15%), 주행세가 137.54원(교통세의 26%)입니다. 판매부과금(L당 36원)과 부가세 10%도 있습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유류세 및 부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비자 휘발유값의 59%에 달합니다. 세금이 절반을 훌쩍 넘는 것이지요. 유통비용 및 마진이 6%입니다.
국제유가 등락은 우리 경제에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유가가 떨어지면 차량 등 유지비가 적게 들지만 우리 경제엔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주력 수출품인 석유화학·석유제품 판매가 감소하고, 대(對)중동 수출도 줄기 때문이죠. 우리 수출품의 절반 정도는 어떤 식으로든 유가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반대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경상수지에 문제가 생깁니다. 전체 수입액의 3분의 1을 석유 등 에너지가 차지하는 상황에서, ‘지출’(수입)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개별 소비자 입장에선 기름값이 떨어질수록 좋겠지만 국제유가는 적당히 안정세를 유지하는 게 가장 낫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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