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그룹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글로벌 투자사업이 예기치 못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제동이 걸렸다. 당장 국내 자본의 해외 부동산 투자로는 사상 최대인 58억달러(약 7조원)를 투입해 미국 내 최고급 호텔 15개를 인수하는 거래에 빨간불이 켜졌다.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놓고서도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미래에셋이 호텔·항공 등 여행업 관련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공격적으로 확대한 결과 코로나19와 같은 돌발 변수 대처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에 여행·항공업 ‘휘청’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은 작년 9월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58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미국 15개 호텔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놓고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서너 곳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계열사가 18억달러가량을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 40억달러는 현지 IB가 주선하는 담보대출로 충당하는 구조였다. 당초 미래에셋은 이달 말까지 인수 잔금 납입을 마치고 안방보험과의 거래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담보대출 협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거래 종료 시점이 한두 달가량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호텔 등 여행업 투자 매력도가 낮아진 만큼 미래에셋이 담보대출 투자자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미래에셋 자체 자금조달 비중을 높이는 것 역시 여의치 않다. 미래에셋은 원래 자체 부담분(2조2000억원) 중 1조원가량은 국내 기관투자가 등을 대상으로 재판매(셀다운)해 충당하려고 했으나 투자 수요 감소를 고려해 최근 셀다운 목표치를 5000억원 정도로 낮춰 잡았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 등의 현지 실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투자 심의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도 악재”라고 말했다.
HDC현대산업개발과 컨소시엄을 이뤄 추진 중인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앞날이 불투명하다. 미래에셋대우는 아시아나 지분 14.9%를 인수하는 데 4900억원을 투자하기로 약정한 상태다. 하지만 글로벌 하늘길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꽉 막힌 상황에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생사의 갈림길에 설 것이란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호텔 투자 쏠림에 재무 부담↑
미래에셋은 2013년 호주 시드니와 서울 포시즌스호텔을 시작으로 보유 호텔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이번에 미국 15개 호텔 인수에 성공할 경우 미래에셋 보유 호텔은 21개, 객실 수는 1만704개로 늘어난다.
미래에셋의 ‘호텔 투자 드라이브’는 “관광업에 미래가 있다”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박 회장은 “철저하게 지속적인 일드(수익)를 창출하는 우량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며 “최고 입지의 명성이 높은 고급 호텔은 불황을 이길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해왔다.
미래에셋 안팎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미래에셋 투자 포트폴리오의 여행업 쏠림 현상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행 수요의 경우 다른 지출보다 경기에 따른 탄력성이 큰 편인데 지난 수년간 여행업 성장세만 눈여겨보고 위험(리스크)은 간과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코로나19 사태로 미래에셋이 보유한 호텔 자산에 대한 타격이 가시화하면 상당한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자본건전성 지표인 순자본비율(NCR)이 2017년 말 2386.6%에서 지난해 1770.3%로 하락한 상황이다. 상반기 미국 호텔과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물론 네이버파이낸셜(6792억원),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 법인(3879억원) 등 대규모 투자가 예정돼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서 호텔 투자의 매력이 그만큼 높아졌다고 본다”며 “당장은 일시적 충격으로 호텔 실적이 나빠질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본래 가치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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