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는 위기에 맞는 대책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입력 2020-03-19 18:09   수정 2020-03-20 00:16

하루하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초현실적이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코스피지수는 어제 1500선마저 무너졌다. 한 달 새 35% 급락했어도 아직 바닥을 가늠할 수 없다. 원·달러 환율은 40원 뛰면서 1300원 선에 육박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20달러 선 붕괴를 코앞에 두고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환율 상승과 유가 하락을 반길 수도 없는 처지다. 오히려 더 염려스럽다.

‘경제는 심리’라는데 시시각각 중계되는 금융시장 상황은 경제주체들의 자산 손실뿐 아니라 심리적 충격을 더한다. 한국 증시가 반등다운 반등 한 번 없이 맥없이 주저앉는 것을 보면 자괴감마저 든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지만 내일은 또 어떨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게 경제주체들을 더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분명 세계적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초비상 시국이다. 어제 정부가 대통령 주재로 1차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50조원 규모의 ‘특단의 비상금융조치’를 내놓은 것도 그런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찔끔 대책’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처로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를 완화하려는 의도도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비상금융조치가 ‘미증유의 위기’에 걸맞은 대책인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충격이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전방위로 미치는데 긴급지원 대상은 전례를 답습하듯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고용이 많고 전후방 연쇄 파장이 큰 중견·대기업은 중소기업이 아니라고 외면한다면 제대로 된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저비용항공사(LCC)를 지원하면서 대형 항공사는 빼고, 소규모 자영업은 도우면서 직원이 많은 중대형 사업자는 못 본 체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필요하다면 지원 규모를 늘리더라도 지원대상의 크기만 따져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피해 업체에 긴급자금을 지원하고 보증을 확대하는 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 고용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서민대책임을 명심하고, 기업의 흑자도산을 막는 데 정부는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위기대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시급성과 함께 꼭 필요한 곳에 지원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여서 미국 유럽처럼 1000조원대의 양적완화, 재정투입 같은 특단의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금융시장 붕괴에도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이다. 재정여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국가부채를 마냥 늘릴 경우 환율 급등, 외국인자금 이탈 등 더 큰 2차 충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정책수단에 한계가 있더라도 경제주체들에게 ‘백약이 무효’라는 좌절감을 안겨선 안 된다. 우리 경제의 ‘기저질환’을 유발한 획일적이고 무리한 친노조 정책, 탈원전 등을 전면 재검토하고 기업들의 사기를 되살릴 여건을 조성해줘야 할 때다. 특단의 대책에는 ‘거꾸로 간 정책’들을 바로잡는 것도 포함돼야 한다. 위기는 위기에 걸맞게 대처할 때에야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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