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은 기술투자 대국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기술투자액은 87조원 규모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 2위를 다퉜다. 올해 정부 기술투자 예산도 24조원 규모로 지난해에 비해 20% 늘었다. 선진기술 모방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이른 만큼 역대 정부는 신기술 개발에서 돌파구를 모색해왔다. 전 정부의 ‘창조경제’, 현 정부의 ‘혁신성장’이 다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방향 설정은 옳았지만, 투자 효율성 측면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물량 공세로 자원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R&D) 투자의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28위에 불과하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기술성장정책은 어떻게 해야 기술을 발전시키고 성장을 이뤄가는지 그 기본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명확한 비전 설정 없이 무조건 투자만 늘려온 데 기인한다. 마치 씨를 뿌리고 비가 내리기만 기다리듯, 돈만 쏟아부으면 기술은 저절로 개발돼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천수답 성장정책’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경제성장이론에서 기술진보의 중요성은 이미 1950년대에 로버트 솔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가 강조했다. 솔로 교수는 미국이 거의 100년에 걸쳐 연 2%대 성장을 유지한 비결을 기술진보에서 찾고, 이를 이론화해 주류 경제성장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물론 솔로 교수도 한 나라의 기술진보율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 채 그냥 ‘외생적으로’ 주어진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솔로의 이론은 예를 들어,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1961~1980년 장기성장률이 각각 8.5%, 1.5%로 크게 차이가 난 이유를 두 나라의 기술진보율이 그냥 외생적으로 다르게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은 운이 좋아 기술진보율이 높았고, 방글라데시는 운이 나빠 기술진보율이 낮았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운명론이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말 등장한 내생적 성장이론은 기술진보의 핵심도 인적 자본이란 점을 밝혀냈다. 솔로 교수가 운(運)처럼 외생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가정한 기술진보를 인적 자본 축적에 의해 내생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이론화한 것이다. 특히 내생적 성장이론을 정립한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재화의 출현’을 기술진보로 정의하고, 기술진보가 일어나는 속도는 R&D에 종사하는 사람(인적 자본) 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의 경제모형을 제시했다. 로머 교수는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일찍이 경제에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도 기술혁신의 주체로 사람(기업가)을 꼽았다.
결국 기술진보의 핵심 원리는 ‘기술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창의성을 발휘해 스스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축적한 사람, 필자의 표현대로라면 ‘창조형 인적 자본’을 축적한 사람이 기술진보의 요체인 셈이다. 미국이 100년 넘게 기술진보의 최전선에서 세계를 주름잡아 온 것도 결국 멀리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에서 가깝게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창조적 인재들이 출현해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온 덕분이다.
따라서 기술진보 성장정책도 창조형 인적 자본을 축적한 창의적 인재의 육성 및 공급에 역량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창조경제, 혁신성장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여러 지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어 예산만 투입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기술이 개발되고 혁신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새 기술은 나올 수 없다.
더 이상 ‘가짜 성장정책’인 경기부양책이나 천수답 기술정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기술창조는 창조형 인재가 존재해야 가능해진다. 창조형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정책만이 유일한 ‘진짜 성장정책’임을 되새겨야 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