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재난소득' 아닌 피해 당사자 지원에 집중해야

입력 2020-03-19 18:17   수정 2020-03-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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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국 경제에 막대한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를 단행, 유동성 완화 조치를 취했다. 재정 측면에서는 11조7000억원의 추경안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했고, 고용노동부는 관광업·항공업·공연업 등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긴급 고용유지 조치를 발동했다. 정치권에서는 재정으로 전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재난기본소득’을 언급하고 있다. 위기에 대응한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현 위기의 본질과 한국 경제의 제약 요인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실효성 있는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

이번 위기는 지난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지난 위기들이 금융 부문에서 촉발된 위기인 반면, 이번 위기는 대면접촉 급감과 국내외 이동성 제한으로 소비가 위축된 실물경제 위기다. 특히 대면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 부문과 해외 수요에 의존하는 수출산업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자영업과 기업들이 경영 악화와 유동성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고, 이는 연쇄 도산·대량 실업·가계소득 급감·취약계층 확대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위기가 특별히 대처하기 힘든 이유는 그 원인이 소비성향 하락에 있고,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한국 경제에서 재정건전성은 선진국의 사례보다 더 심각한 제약 요인이 된다. 외화의존도가 높고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닌 이상 선진국과 달리 우리 경제의 재정건전성 악화는 또 다른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선진국 처방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이유로 재정지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선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재정건전성은 최근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2019년 말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예상되는 재정적자를 감안한 국가채무비율(국내총생산 대비)은 2018년 35.9%에서 2020년 41.2%, 2023년 47.9%로 불과 5년 만에 12%포인트 급등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 위기 상황이 상당한 세수 감소와 재정지출 확대를 촉발할 것이므로 재정건전성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최근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는 한국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에 주목하며 국가신용등급을 낮출 가능성을 경고했다. 신용등급 하락은 ‘외화 조달비용 증가→대외건전성 훼손→원화가치 하락→자본 유출’ 등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재난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정 부담에 비해 재난 해소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위기는 활동성 제약에 따른 소비성향의 급격한 하락이 그 원인이어서 정부 보조로 소득을 일시적으로 늘려준다고 해도 소비 진작과 경기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소비가 증가한다고 해도 그 수요가 직접적 피해 기업에 집중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의 도산과 대량 실업을 막지 못한다. 다른 지원책에 비해 훨씬 큰 규모의 재정지출이 필요해 국가채무비율을 급격히 높이고 재정건전성을 위협할 우려도 크다.

재정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연쇄 도산과 대량 실업을 방지해 추락하는 실물경제와 생산기반을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항공·여행·음식·교육서비스 등의 대면 서비스업과 수출 주력산업에 속하는 하청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또 금융제약에 직면해 있는 취약계층과 재무구조가 취약한 자영업 및 중소기업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고용원을 포함한 자영업 부문 취업자 비중이 40%에 이르는 만큼 자영업 부문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영업자의 세금 감면 범위 확대 대책에서 더 나아가 자영업 및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채무 유예·인건비 지원 등 긴급조치가 필요하다. 또 사태 장기화에 따른 단계별 대책을 강구해 국민적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재난을 상쇄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다만 제약 조건과 생산 구조가 선진국과 다른 한국에서는 직접적 피해에 대응해 생산기반 붕괴를 최대한 막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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