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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문화가 코로나 위기 키워
미셸 겔판드 미 메릴랜드대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33개국의 일탈 문화를 조사해 비교한 논문을 200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한 적이 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규칙에 강하고 탈선이나 일탈을 용인하지 않는 국가를 ‘엄격한(tight) 국가’로, 일탈을 쉽게 받아들이는 국가를 ‘느슨한(loose) 국가’로 나눠 관찰했다. 그 결과 파키스탄이 가장 엄격한 국가로 꼽혔고 싱가포르 한국 일본 등이 엄격한 국가로 분류됐다. 반면에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 느슨한 국가로 조사됐다. 유럽에선 이탈리아와 헝가리, 스페인 등이 여기에 속했다. 의외의 사실은 미국과 독일도 평균 대비 느슨한 국가로 판정났다는 것이다. 겔판드 교수는 느슨한 국가의 경우 창의력이 뛰어나고 개방적이지만 무질서한 게 큰 약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근이나 전쟁, 자연재해, 병원균 등의 발생 이력이 있는 국가에선 엄격한 문화가 개인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겔판드 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에서 이 논문을 상기시키면서 바이러스 위기에서 분권화되고 도전적이며 자신의 스타일대로 하려는 문화는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밝혔다. 미국과 독일에서 벌어졌던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대립, 미국 대학 봉쇄에 대한 대학의 반응이 일관되지 않았던 것 등의 논란이 이런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위기 땐 시민의식이 경쟁력
《로빈슨 크루소》 작가로 유명한 대니얼 디포는 《전염병 연대기》에서 전염병으로 사회가 엄청난 불행을 맞는데도 자신의 보신책에 급급할 뿐인 일부 시민의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의회가 특별방역법을 제정했는데도 판사들은 도망가고 없다. 죄수에게서 전염병이라도 옮을까봐 두려워서다. 느슨한 국가들의 일단면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숫자는 금리가 아니라 코로나19 환자 수와 치료를 위해 필요한 중환자실의 수”라고 했다. 그만큼 중환자실 수가 적으면 대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느슨한 국가들이 그려낸 궤적일 수 있다. 지금 지구촌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프리드먼은 코로나 이전의 세기와 코로나 이후의 세기로 나뉜다고까지 했다. 평상시에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문화가 혁신을 낳을지 모른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선 결국 성숙한 시민의식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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