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기업 신용 위험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연 1.945%로 같은 만기의 국고채(연 1.107%)와의 금리 격차를 0.838%포인트까지 벌렸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1월 20일 이후 두 달간 0.259%포인트 확대되며 2012년 2월 6일(0.850%포인트) 이후 가장 큰 격차를 기록했다. 2012년은 동양·웅진·STX그룹 등이 줄줄이 유동성 위기를 맞아 산업계 전반이 부도 공포에 휩싸였던 시기다.
회사채 스프레드가 급격히 확대되는 건 위기 전조로 풀이된다. 기업들에 닥칠 위기에 앞서 경고음을 울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위험의 조짐을 예고하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의 경험을 보면 그해 초 1.05%포인트였던 AA-등급 회사채 스프레드가 연말엔 4.6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그해 하반기 한국은행이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연 5.25%에서 3.00%로 내리면서 국고채 금리가 내리막을 탄 가운데 회사채 금리는 뛴 영향이다.
해외시장에서도 국내 대표 기업들의 외화채권 스프레드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포스코의 5년 만기 달러화채권과 미국 국채 간 금리 격차는 발행 직후인 1월 중순 1%포인트 수준이었지만 지난 18일엔 2.0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뒤 두 달간 LG화학(0.89%포인트), GS칼텍스(0.65%포인트), SK하이닉스(0.51%포인트) 등 업종별 간판 기업의 외화채권 스프레드도 확대됐다. 신한은행의 유로화채권 스프레드는 이 기간 0.42%포인트 벌어졌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글로벌 회사채 시장에서 거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신용등급 하락 가속화
코로나19가 실물경제에 충격을 주면서 기업 실적이 꺾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 41개 상장 계열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증권사 평균)는 총 13조5017억원으로 연초 대비 12.8% 줄었다. 교역 감소와 내수 부진 등 영업환경 악화가 ‘실적 부진→재무구조 악화→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 간판 기업들의 신용도에도 금이 가고 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이마트, KCC 등의 등급이 줄줄이 강등됐다. “‘반도체 착시’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불안정한 기업 신용의 단면을 코로나19 사태가 드러냈다”(국내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지적도 나온다. 무디스와 S&P, 피치 중 한 곳이라도 부정적 전망을 붙인 한국 기업(금융회사 제외)은 20여 곳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등급 강등 도미노가 벌어질 것이란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박준홍 S&P 이사는 “올해는 더 많은 기업이 신용등급 강등 압박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용경색 막는 과감한 조치 필요
금융투자업계에선 정부가 과감한 대책으로 신용경색 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업의 단기 자금조달 수단인 기업어음(CP)을 사들이기로 한 것처럼 한국도 기업의 ‘돈맥경화’를 해소하고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을 막기 위한 과감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 예정인 회사채(37조1000억원)와 CP·전자단기사채(78조8000억원)는 약 116조원에 달한다. 비교적 신용도가 낮다고 분류되는 ‘A’등급 이하 회사채와 ‘A2-’등급 이하 CP·전단채 물량만 약 43조원이다. 이 중 약 26조원어치가 상반기에 만기 도래한다. 윤원태 SK증권 연구원은 “26조원어치 중 절반이 상환되지 않는다고 보수적으로 가정하면 정부가 10조원을 목표로 추진하는 채권시장안정펀드 규모가 최소 15조원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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