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본 정부가 조만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긴급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긴급사태가 선포되면 광역단체(都道府縣)장이 외출 자제와 학교 휴교 등을 요구하거나 지시할 수 있으며 흥행시설의 이용 제한, 토지나 건물의 임시 의료시설 강제 사용, 긴급물자 수송 요청 및 지시가 가능해진다.
나아가 코로나19 대응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적자국채 발행까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적자국채가 발행된다면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이후 경제대책을 위한 첫 적자국채다.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환자가 계속 증가하는 지역에서 '폭발적 감염(오버슈트)’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와 도쿄올림픽 연기 요청이 빗발치는 데 따른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21일 도쿄신문 등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본부 설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19와 관련해 행정 수반인 총리가 긴급사태를 선포해 개인의 자유를 일정 범위에서 제약할 수 있도록 하는 '신종 인플루엔자 등 대책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지난 14일 발효됐다. 지난 12~13일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차례로 가결된 이 법은 신종 인플루엔자 대응을 목적으로 제정됐던 특별법의 적용 대상에 코로나19를 추가했다.
이 법을 근거로 총리는 코로나19의 전국적인 확산으로 국민 생활과 경제가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 국회에 보고하고 긴급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대책본부는 전염병 대책을 관장하는 후생노동상(장관)의 보고를 근거로 총리가 각의 결정을 거쳐 설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부장은 총리가 맡아 기본적인 대응 방침을 정한다.
중앙정부의 대책본부가 출범하면 광역단체인 도도부현도 대책본부를 가동해 중앙정부 지침에 따라 각종 대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 본부 가동이 곧 긴급사태 선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도쿄신문은 내다봤다. 일본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법적 근거가 있는 조직으로 대응하는 것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기 쉬워진다"며 "대책본부 설치가 곧바로 긴급사태 선언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잘라 답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긴급사태 발동 가능성이 커진 이유 중 하나는 도쿄와 오사카 등 인구 밀집 지역에서의 ‘집단 감염’ 우려가 지적됐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일본 정부에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조언하는 전문가그룹은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계속 증가하는 지역에선 오버슈트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며 철저한 대응을 주문했었다.
후생노동성은 이와 관련해 최근 각 지자체에 내려보낸 공문을 통해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의료체제를 정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 일본 정부는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코로나19 최고 유행기에 경증 환자가 의료기관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진료체계가 마비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당국은 코로나 대응 재원 마련책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가 다음달 확정할 예정인 코로나19 대응 긴급 경제대책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적자국채는 정부가 일반회계 예산의 세입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하는 채권으로,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인수한다.
일본 정부는 다음주 중 국회 통과가 예상되는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 예산안에 코로나19 같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5000억엔의 예비비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게 현지 언론의 판단이다.
이 신문은 또 “지난해 12월 해외경기 침체 대응과 재해복구 등에 초점을 맞춘 26조엔 규모의 경제대책을 마련하면서 건설국채와 잉여금 등으로 재원을 확보했지만 이번에는 일반예산이 확정된 직후라서 잉여금을 활용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적자국채 발행을 검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 시점에서 경제대책을 마련하는 건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9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경제 위기 대책' 경비로 공공사업 등에 용도를 제한한 7조2000억엔 규모의 건설국채 외에 3조5000억엔의 적자국채를 발행했었다.
다만 2002년 기준으로 600조엔 수준이던 일본의 나랏빚은 2012년 재집권한 아베 총리의 확장적 재정 정책 영향으로 2017년 1000조엔을 돌파하는 등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상은 그러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일을 모두 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내놨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도쿄올림픽의 연기 요청까지 거세지고 있다.
노르웨이 올림픽위원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올해 7월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의 연기를 요구했는데 슬로베니아, 콜롬비아 올림픽위원장까지 입을 모아 “올림픽 개최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웨이 올림픽위원회는 이날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도쿄올림픽 개최를 미루자'는 의견을 담은 공문을 IOC에 발송했다. 예정대로라면 도쿄올림픽은 7월2일부터 8월9일까지 열린다. 이후 8월25일부터 장애인올림픽이 이어진다.
로이터통신은 "슬로베니아 올림픽위원회 보그단 가브로베치 위원장도 자국 뉴스 통신사 STA와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선수들이 올림픽 준비에 공평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으므로 대회를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가브로베치 위원장은 "2021년에 올림픽을 열어도 문제 될 것이 없다"며 1년 정도 개최 시기를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콜롬비아 올림픽위원회 발타사르 메디다 위원장 역시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IOC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대회 연기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메디다 위원장은 "개인적인 의견 역시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IOC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경기 일정을 지키기 위해 1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건강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앞서 20일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통해 "현재 다른 시나리오도 검토하고 있지만 올림픽이 4개월 정도 남은 지금 시점에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현재로서는 올림픽 연기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엔도 도시아키 부위원장도 노르웨이 올림픽위원회의 서한과 관련해 "조직위는 올림픽 취소나 연기를 결정하는 단체가 아니다"라며 "최종 결정은 IOC가 하는 것으로, 조직위는 7월 개막을 위해 대회를 준비하는 단체”라고 대답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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