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위험 관리에도 원칙이 있다

입력 2020-03-22 18:42   수정 2020-03-23 00:11

2002년 이라크전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도널드 럼즈펠드는 “세상에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들(unknown unknowns)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그 후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고, 기업의 생존전략을 분석할 때 자주 사용됐다. 이 말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대비되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우선, 세상에는 우리가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들(known knowns)이 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면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종종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경우(known unknowns)가 있다.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어떤 경우의 수가 있고, 각각의 확률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이에 속한다. 예를 들어 기상청은 내일 날씨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맑을지, 비가 올지, 혹은 눈이 올지 등에 대해 각각의 확률을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그 확률에 맞춰 각각의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모를 때다. 이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 된다. 세계가 지금 겪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이 상황에 해당한다. 이는 요즘 가끔 언급되는 ‘블랙 스완(검은 백조)’과도 다른 상황이다. 블랙 스완은 작은 확률로 커다란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무엇을 모르는지는 아는’ 상황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검은 백조는 그런 예외적인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또한 그것이 발생하는 확률이 매우 작다는 것을 알아 그에 대비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면 대비가 불가능하다.

지난해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는 이런 전염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당연히 코로나19의 전염성, 치사율, 감염 경로, 예방책, 그리고 치료제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지경이다. 이런 미지의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어렵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니 각각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나, 흔히 사용하는 기댓값을 계산해 그에 맞는 대응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때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대응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대응책조차 충분하리라는 보장이 없지만 그래도 최선의 방법이 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제적’이고 ‘포괄적’인 대응이 이것이다. 이런 미지의 위험 아래에서 사람들은 극도로 위축돼 모든 사회적 활동을 멈추게 된다. 전염병이 어떻게 전염되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다. 당연히 경제 역시 극도로 위축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경제 위축을 피하기 위해 어정쩡하게 경제 활동을 유지하는 것은 불확실성의 근원인 전염병의 위험을 증가시키므로 절대로 피해야 한다.

사실 전염병 확산이 지속하는 상황에선 경제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전염되는지도 알지 못하는 전염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행을 다닐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더욱이 경제 위축은 우리가 미지의 위험하에 있다는 불안으로부터 더욱 확대되므로 일단 이 위험에 대한 이해를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 활동을 줄이고서라도 말이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빨리 전염병의 확산을 막고, 그 이후에 경제 회복에 나서는 것이 순리다. 특히 사람들의 이동을 줄이는 것이 크게 도움 된다.

물론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면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전염’이라는 사건 자체가 사람들의 이동으로 인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를 최소화하는 것은 전염병의 확산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입국 제한 등 사람의 이동 억제로부터 생겨나는 경제적 손실은 우리가 계산할 수 있는 인지된 위험인 데 비해 전염병의 확산은 아직 미지의 위험이다. 이 둘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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