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영의 데스크 시각] 5G 1년과 LTE 데자뷔

입력 2020-03-22 18:45   수정 2020-03-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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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3일 한국은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에 성공했다. ‘심야 개통’이라는 해프닝 끝에 ‘세계 최초’ 타이틀을 따냈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흥분과 기대는 크게 잦아들었다. 지난해 말부터 5G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하더니 올 1월엔 처음으로 월 순증 가입자가 3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시장은 얼어붙었다. 스마트폰 신제품 판매는 기대에 못 미치고, 기존 5G폰 가격을 내려도 성장의 불씨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다.

마케팅만으론 생태계 한계

5G 시장 둔화를 코로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소비자들이 굳이 5G로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큰 이유다. 통신사들은 5G가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홍보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런 속도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외 지역이나 실내, 지하철 등에선 “안 터진다”는 불만이 많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클라우드 게임 외에 5G 콘텐츠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2011년 7월 1일 전파를 쏘아올린 LTE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비스 초기 소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요금이 올랐는데 서비스 품질은 불만투성이였다. 전국 곳곳에 5G망이 촘촘히 깔리기 전까지 소비자 불만은 계속될 것이다. 3G가 모바일 인터넷 세상을 열었다면 4G LTE는 영상 콘텐츠 시대를 이끌었다. LTE는 고화질로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을 가능하게 했다. 통신사들은 킬러콘텐츠로 고화질 영상통화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세웠다. 실제로 대용량·고화질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뤄지면서 관련 시장이 폭발했다.

하지만 4G 시대의 승자는 통신사가 아니라 스마트폰 업체와 플랫폼 서비스 업체였다. 유튜브는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을 장악했고, 국내 메시지 시장은 카카오톡에 넘어갔다. 카카오톡은 국민 메신저를 넘어 검색, 게임, 음악, 쇼핑, 결제 등 각종 서비스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규제 패러다임 진화해야

4G가 스마트폰 중심이었다면 5G는 스마트폰을 넘어 다양한 기기와 연결된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원격진료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의미있는 시장과 서비스를 창출했는지 의문이다. 서비스와 콘텐츠를 기반으로 자생적인 시장을 형성하기보다 통신사들의 보조금 마케팅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수익성 악화에 요금 인하 압박까지 받는 통신사들은 과거처럼 보조금을 펑펑 써가며 가입자를 늘리기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위축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한국을 비롯해 각국은 5G 인프라 투자를 경기 활성화 카드로 꺼내들었다. 각국의 5G 서비스 경쟁이 이제 본격화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화상회의 원격근무 등 비대면 업무가 활성화되고, ‘언택트 소비’가 확대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기업들의 클라우드 도입과 디지털 전환이 빨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5G 성장에 긍정적인 신호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통신사들은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원격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5G를 활용한 실증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원격의료는 규제에 막혀 시작도 못하고 있다. 통신요금은 정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5G 통신망만 깐다고 해서 생태계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5G 관련 분야는 ‘선허용 후규제’를 통해 신산업이 꽃피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5G가 진정한 ‘4차 산업혁명의 혈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규제 패러다임의 진화가 절실하다.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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